우리 연배의 소녀시절엔 마리 퀴리가 우상이었다. 조국을 위해 가난한 고학시절을 견디며 폴로늄을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은 그녀의 애국심에 가슴 뜨거워지기도 했었다. 선배과학자 피에르 퀴리와 함께 자전거로 나선 낭만적인 신혼여행도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워너 비’였던 마리 퀴리와 별개로 생물과 물상, 화학으로 쪼개진 과학시간은 지루하고 난해하기만 해서 끝내 마음 붙이지 못했지만.

지난주까지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마무리됐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연구 아이디어와 관찰 대상을 담은 스케치에서 위대한 연구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최근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 스케치를 모아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니 ‘노벨상을 받은 스케치’로 유명한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1852∼1934)이 떠오른다.

카할의 골지의 질화는 염색법을 사용한 드로잉인 ‘소뇌피질의 푸르키네 세포’는 그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그린 것이다. 언뜻 초현실주의 작가의 자동 기술적 소묘로 보이기도 하고, 의식적 억압 없이 그려진 환상적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카할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수백 점의 신경세포 스케치를 남겼는데 그 자체가 신경과학에 남긴 뚜렷한 업적으로 손꼽힐 정도다. 그의 스케치들은 전자현미경이 일반화된 현재에도 여전히 교육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다. 카할은 현대 신경 해부학과 신경 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뉴런을 신경계 구조의 기초단위로 확립한 신화적 인물로 19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소영 과학 칼럼리스트는 저서 ‘실험실의 명화’에서 “신경과학의 초기 개척자들은 예술가이기도 했다”면서 “과학자들은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고 공감을 얻기 위해 결과물을 시각화하는데 공을 들이고, 이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지난한 노력 덕분에 오늘날 ‘무병장수’라는 인류의 원대한 꿈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 같다. 〈이미지 ‘실험실의 명화’제공〉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