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다루었던 사극의 소재 가운데 하나가 ‘사도세자의 죽음’일 것이다. 평생 동안 경종 독살설과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영조, 그의 친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인 사건 자체가 다분히 극적이다. 정조가 즉위한 후 사도세자 죽음의 책임을 물어 외가를 폐가시키면서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눈물 흘리게끔 했던 것도 드라마적이다.

얼마 전 시작한 드라마 ‘비밀의 문’은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1735∼1762)의 죽음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드라마는 사도세자의 초상화가였던 화원 신흥복의 의문사로 출발한다.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 사도세자는 예술가 기질이 강해 경전 읽기보다 시 짓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말을 타고 유람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도화서 화원을 “벗으로 여겨 아꼈던” 사도세자는 그와 더불어 그림도 자주 그렸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살짝 비춰지지만 사도세자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그림은 뜻밖에도 세 마리의 개를 그린 ‘개 그림’이다. 큰 개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작은 개 두 마리, 작은 개는 좋아라 꼬리치며 뛰어오지만 큰 개는 관심도 없다. 현군의 자질을 지녔음에도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사도세자의 심정을 담은 듯 다시 보아도 애잔한 느낌이다.

공저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가운데 ‘궁궐의 개, 사도세자의 개’라는 글에서 정병설교수(서울대 국문과)는 “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싶은 사도세자와 부자가 아니라 군신 관계로만 대하여 늘 엄격했던 영조를 그린듯하다”고 해석한다. 정교수는 사도세자가 ‘개 그림’을 그렸을 무렵 동물화가로 이름 높은 김두량과 변상벽의 비슷한 개 그림이 여럿 그려졌다는 사실도 소개하면서 화원들이 그린 개 그림들이 사도세자의 애견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덧붙여 흥미롭다.

그림은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결국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 ‘몸속에만 머물기 버거운 영혼’이 글과 그림으로 현현하는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