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증권사 미래연구소에서 설문조사한 결과가 널리 회자되고 있다. 노후에 필요한 것의 순위가 남성은 건강, 배우자, 돈인데 반해 여성은 건강, 돈, 배우자 순으로 꼽았던 것이다. 이래저래 여자와 남자는 좀 다른 구석이 있나 보다.

심리학자인 김정운 여러 가지 문제연구소장이 저서 ‘남자의 물건’에서 “한국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 남자들의 문제”라고 했던 분석이 떠오른다. 그는 여성과 남성의 의식 차이를 ‘이야기’에서 찾는다. 오늘날 ‘인간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는 이른바 ‘내러티브 전환’이 이루어졌음에도 한국 남자들에게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여자들은 그릇, 옷, 보자기 등 자신이 쓰거나 지닌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에 삶의 의미와 이야기를 채워 넣는다. 남자들은 대개 자신을 둘러싼 물건들에 무신경한 편이다. 하지만 단원 김홍도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던 듯싶다.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작품 가운데 이야기 거리가 풍부한 ‘남자의 물건’을 그린 그림이 있다. 단원의 자화상이기도 한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를 볼 때마다 단원의 마음 속에 차올랐을 충만한 이야기가 느껴진다. 갸름하고 반듯한 얼굴, 총명한 눈빛, 당비파를 연주하는 앞쪽에 생황까지 놓여 있어 음악을 애호했던 일상이 짐작된다. 주변에 문방사우와 서적, 완상용 자기와 청동기, 술 담긴 호리병과 옛 시인이 시를 썼다가 그냥 개울물에 띄워버렸다는 파초 잎까지…. 저서 ‘단원 김홍도’를 남긴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사방관을 썼으니 예를 아는 선비로되 드러난 맨발로 초탈한 심사를 엿보게 하니, 그 마음은 단번에 쓱쓱 그어댄 화폭 속 윤곽선과 꼭 닮았다”고 언급한다.

‘포의풍류도’에서 술의 흥취와 자기의 멋, 음악의 풍류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삶과 낭만을 본다. 단원은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