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대상을 재현해서 이 대상과 비슷하게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 전통적인 회화의 개념이다. 실재를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최고의 회화는 까치와 참새가 날아든 솔거의 소나무그림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에피소드도 놀라운 화가의 솜씨를 보여준다.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를 새들이 진짜인 줄 알고 쪼려고 했다. 라이벌 파라시오스는 “나는 새뿐만 아니라 사람도 속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파라시오스의 작업실에 초대받은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가 가리킨 커튼 뒤에 있는 그림을 보려고 커튼을 열려고 했다가 곧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는다. 바로 그 커텐이 그림이었던 것이다. 이 일화는 그림을 실제 사물로 혼동하게 만드는 기법인 트롱프 뢰유(눈속임)의 대표적인 일화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4일 개막하는 제10회 광주비엔날레는 전시관 전면 파사드에 내걸린 영국 작가 제러미 델러(1966∼ )의 거대한 문어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불타는 비엔날레 건물에서 탈출하는 문어 모양의 트롱프 뢰유(trompe-l’œil) 배너는 매우 사실적인 묘사로 드라마틱한 착시를 야기한다.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문어발 기업 확장’ 등의 부정적인 문어의 이미지가 서양에서도 정치적 풍자나 비판적 의미로 사용되는데 착안하여 광주의 역사와 현재를 고려했다고 한다. 경쾌한 형식으로 제도나 기관을 비판하는 이 작품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물리적인 장소에 반대해 온 미술운동의 역사도 암시하고 있다.

많고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그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지고 마음이 가는 매혹적인 작품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서양미술사의 재발견’의 저자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는 “충격이나 놀라움과 같은 감동, 시간과 함께 지속되는 경험을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새로움’이 주는 감동으로 그 의미를 고찰하게 하는 광주비엔날레는 고전주의적 명제인 트롱프 뢰유를 비롯 신사실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시각 경험의 장을 선사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