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군사도 배도 없는 조선 수군을 다시 모아 일본군 330척에 맞서야하는 이순신장군. 매번 전공을 세울 때마다 그를 시기했던 임금 선조에게 이번에도 ‘원망하는 마음 없이’ 붓을 들어 고하고 명량 앞바다로 향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죽을 각오로 다스리며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이순신장군의 해전은 다시 보아도 감격스럽다. 지난 주말 심야영화 ‘명량’에서 만난 영웅 이순신장군의 활약은 시공을 넘어 이 여름 쉽게 좌절하곤 하는 우리에게 큰 용기를 준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한때는 이 명언을 필사의 각오만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장군은 철저히 계산하고 준비하면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싸움의 과학’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거북선 설계자, 해전 전문가, 물길 연구가, 화약 제조자, 총포 개발자 등 실력 있는 과학자와 전문가를 그러모았고, 충(忠)은 임금이 아닌 백성을 향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닐 수 있었으리라.

명량은 해남과 진도 사이의 빠른 바다 길목으로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마치 바다가 우는 것 같다 하여 ‘울돌목’이라고도 불린다. 진도 출신의 한국화가 옥산 김옥진(1927∼ )의 작품 ‘울돌목 소견’(1979년작)은 그해 국전 초대작가상 수상작으로 화백이 수없이 그 바다를 건너며 받았던 현장의 인상을 표현한 걸작이다. 화면의 중심에 묘사된 물살은 영화 속 큰사리 때 회호리가 몰아치는 모습 그대로인 듯 소용돌이치는 바다의 아우성이 그르렁 그르렁 들리는 듯하다.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이룬 장군은 저 멀리 평온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중일기에 “이것은 실로 천행이다”라며 되뇌었던 장군은 다시 가장 완벽한 출전 준비를 하며 승리가 만들어 준 조선의 평화를 꿈꾸었을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