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비가 내리네/추억을 말해주듯이/이렇게 비가 내리면/그 날이 생각이 나네/옷깃을 세워주면서/우산을 받쳐준 사람/오늘도 잊지 못하고/빗속을 혼자서 가네…”〈채은옥의 노래 ‘빗물’ 중에서〉

장마철이다. 예년에 비한다면 시기적으로 지각장마일 것이다. 태풍 ‘너구리’가 지나가면서 여름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요즘엔 이렇게 비가 내리면 추억의 유행가가 가슴을 적셔온다. 올 봄에 관람했던 영화 ‘수상한 그녀’ 속 ‘젊어진’ 여주인공이 애닯게 불렀던 노랫가락이 아직도 생생해서 일까? 내리는 비를 보니 노래도, 영화도, 추억도 되살아난다.

화가들은 비를 어떻게 맞이했을까? 비를 소재로 한 화가들의 작품들에는 풍경화가 압도적이다. 영국 출신 팝 아트 작가 줄리언 오피(1958∼ ) 역시 개성있는 감성과 구도로 비 내리는 도시풍경을 그렸다. 특정한 인물 혹은 장소를 통해 도시적 삶을 규정하는 역동적 시스템에 대해 탐구해 오고 있는 작가는 특히 사람의 움직임을 고도의 감각적인 안목으로 관찰해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 ‘비 내리는 신사동을 걸으며’(2014년 작)는 작가가 서울에 머물면서 만났던 보행자들의 인상을 담은 회화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패셔너블한 소품들과 밝은 색채의 의상, 경쾌한 발걸음,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 도시인들의 초상화일 것이다.

“아무 거리에서나 잠시 멈춰 지나가는 군중들을 바라보라. 이 걸어가는 인물들에게서 아름다움과 에너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목적에 휩싸여 있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옷차림을 연출하면서도, 낯선 이들과 뒤섞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작위적인 춤을 창조해 낸다.” 작가의 언급은 무심코 거리를 오갔던 우리가 바로 풍경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