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연이틀 당일 일정으로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많이 가까워 졌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서울 길은 여전히 멀다. 우리 땅이 새삼 넓고도 크다는 생각이 들만큼 고단하고 길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이어진 모내기를 마친 푸른 들녘 풍경이 없었다면 아마도 더 힘들었을 것이다.

논 가득 찰랑거리는 물과 어린 모들, 가지런하게 줄이어진 채소밭을 보니 요즘이 한창 농번기인 듯싶다. 농번기와 함께 늘 연상되는 풍경은 일하다 들에서 한상 차려 먹는 못밥이나 새참이다. 광주 토박이인 탓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전해들은 그 새참의 왁자한 분위기와 꿀맛은 상상만으로도 정겹다.

공재 윤두서와 함께 조선후기 풍속화의 개척에 크게 기여한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의 작품 ‘새참’은 고된 농사일을 하다가 식사를 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아들에게 밥을 떠먹이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이 흐뭇하고, 음식 바구니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정담을 나누는가 하면, 아낙이 “더 먹으라”며 가득 음식을 담아 일꾼에게 바구니를 건네주는 인정어린 풍경이 정감 넘친다.

전형적인 선비화가로서 ‘바느질’ ‘작두질’ ‘소젖 짜기’ 등 뛰어난 풍속화를 다수 남겼던 조영석의 그림들은 그의 아들이 모아 엮은 화첩을 통해 전해진다. 조영석은 ‘사제첩(麝臍帖)’, 즉 ‘사향노루의 향기 나는 그림’이라는 뜻의 제목을 붙이고 그 표지에 ‘勿示人 犯者非吾子孫(남들에게 보이지 말라 이것을 범한 자는 내 자손이 아니다)’이라는 금기의 엄명을 덧붙여 놓았다. ‘풍속화’의 저자 이태호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는 “이는 봉건사회의 선비 관료가 서민층의 풍속을 다룬 데 대한 사회적 제약을 염두에 둔 것이라 여겨진다”고 설명한다.

진보적 성향으로 당대 풍속과 민중의 삶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한계 때문에 당당히 내보일 수 없었던 조영석의 그림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두고두고 정겹게 꺼내보고 싶은 친근한 작품이 되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