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의 세상만사] 장병우 판사를 위한 변명
2014년 04월 04일(금) 00:00 가가
달라진 인심 망가지는 개인
그동안 변명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글을 쓴 적이 몇 번 있다. ‘강용석을 위한 변명’ ‘김윤석을 위한 변명’ 등이 그것이다. 그런 글을 썼던 것은 결코 이들이 잘했다는 게 아니었다. 다만 세상만사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면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일이 터지면 모두들 흥분부터 하고 보는 세태가 싫어서이기도 했다.
어느 신문을 들추어도 같은 목소리만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조금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은 논객으로서의 욕심도 있었다. 모두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때 나마저 무의미하게 돌 하나를 더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시작하는 ‘장병우를 위한 변명’도 마찬가지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다. 그러니 사적인 감정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에 대한 주위의 좋은 평판을 들은 바 있고 그래서 사실은 좀 안타까웠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돌을 맞을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장병우 판사에게 ‘일당 5억 노역’ 판결은 무거운 멍에가 됐다. 여론재판에 몰린 그는 지난달 사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엊그제 그와 관련된 위법 행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도 사표를 수리했다.
장 판사는 사표를 제출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의 확정판결에 대해 당시의 양형 사유에 대한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접근 없이 한 단면만 부각되고 나아가 지역 법조계에 대한 비난으로만 확대된 점에 대해서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사표 제출에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 또한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은 심장이 약하고, 여동생은 한쪽 눈의 핏줄이 터져 실명될지도 모르고. 가족들의 심신이 무너져 버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지금은 정반대 여론이 형성됐지만 당시엔 지역경제를 위해 대주그룹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었다.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그리고 심지어 신부와 목사까지 나서서 광주지검에 건의서를 냈다. 광주상공회의소, 광주전남경영자총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남도회 등 경제단체들도 선처를 호소했다. 해남지역 각계 인사들도 탄원서를 냈다. 당시 신문을 들춰 보니 한 지방지(J일보)의 사설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어찌됐든 검찰은 피고인의 벌금 부분에 대해서 선고유예를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다. 선고유예 구형은 허재호 회장이 당시 508억 원 규모의 탈루 세금을 모두 완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법적으로도 조세포탈의 경우 특가법이 적용되면 징역형과 벌금형을 함께 선고해야 하는데 벌금형에 대해서는 포탈세액 환수라는 과세당국의 목적이 달성되면 선고를 유예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김정범(51·28기) 변호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유력 기업가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을 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법률 규정을 살펴보면 법원이 이런 판결을 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튼 당시 장병우 판사의 재판부는 지역 여론을 감안하면서도 법(法) 정의의 실현을 외면하지 않았다. 선고유예로 봐주지 않고 50일 정도의 노역을 명령한 것이다. 이는 경제사범들에게 수백억 원 벌금을 선고유예로써 면제해 주던 이전의 다른 판결에 비해 엄격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차라리 그때 통째로 봐주었다면 지금의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세상사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이후 지나치게 한 부분만 부각되다 보니 판결 하나가 한 판사의 삶 전체를 낙인찍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물론 장 판사에 대한 동정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변호사는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장 판사는 닮고 싶은 선배, 나중에 내가 나이 들어 저만큼 됐으면 싶은 선배였다.”고 했다. 40대의 한 지역 법관도 “당시 재판의 판단 근거는 분석하려조차 않고 향판제의 폐단을 운운하고 지역법관들을 토착세력과 어울리기나 하는 판사로 매도하는 식의 시선은 옳지 않다.”고 했다. 사실 지금은 다들 잊었겠지만 당시 판결에는 다른 사건과는 달리 하청업체들이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됐었다.
최근 장 판사의 자택에는 연일 기자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세간의 관심이 온통 쏠리다 보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청빈까지는 모르겠지만 문제의 아파트를 살 때만 해도 수억 대출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데도 마치 엄청난 비리나 저지른 양 마구 매도해도 되는 것일까. 서민들의 분노야 백번 이해하지만 그렇다 해서 한 개인의 인권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것일까.
이 글을 쓰기로 맘먹었던 엊그제 길거리에서 우연히 한 화가를 만났다. 한잔 같이 하다 보니 그가 장 판사와 동기동창인인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 오간 ‘카톡’ 문자를 보여주었다. “그때는 옳다고 여겼던 선택에 대해 지금에 와서는 자책도 하고 비난도 받곤 하는 일은 너무도 많다. 지금 잘못했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그때 잘했다고 추켜세우던 사람들이다. 그게 인심이니까.”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위로를 건네자 장 판사가 답을 보내왔다. “제가 존경하는 분들께 심려를 끼쳐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몰고 가는 데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이제 그 마음을 거둡니다. 제가 이승에서건 전생에서건, 어떤 작은 증거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그것이 아니라고 절규하는 사람의 말을 외면한 업보려니 생각합니다. 세상살이가 그런 것이려니 하고 지내겠습니다. 이제 법관으로서의 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았을 뿐입니다.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고…. 들판에는 새 풀이 돋아나고 수양버들이 벌써 여린 잎을 틔워 바람에 날립니다. 봄꽃들도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계절의 눈물겨운 순환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새로운 시간에는 새 의미를 찾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장병우 올립니다.”
오늘 시작하는 ‘장병우를 위한 변명’도 마찬가지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다. 그러니 사적인 감정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에 대한 주위의 좋은 평판을 들은 바 있고 그래서 사실은 좀 안타까웠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돌을 맞을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장병우 판사에게 ‘일당 5억 노역’ 판결은 무거운 멍에가 됐다. 여론재판에 몰린 그는 지난달 사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엊그제 그와 관련된 위법 행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도 사표를 수리했다.
사표 제출에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 또한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은 심장이 약하고, 여동생은 한쪽 눈의 핏줄이 터져 실명될지도 모르고. 가족들의 심신이 무너져 버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찌됐든 검찰은 피고인의 벌금 부분에 대해서 선고유예를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다. 선고유예 구형은 허재호 회장이 당시 508억 원 규모의 탈루 세금을 모두 완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법적으로도 조세포탈의 경우 특가법이 적용되면 징역형과 벌금형을 함께 선고해야 하는데 벌금형에 대해서는 포탈세액 환수라는 과세당국의 목적이 달성되면 선고를 유예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김정범(51·28기) 변호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유력 기업가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을 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법률 규정을 살펴보면 법원이 이런 판결을 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튼 당시 장병우 판사의 재판부는 지역 여론을 감안하면서도 법(法) 정의의 실현을 외면하지 않았다. 선고유예로 봐주지 않고 50일 정도의 노역을 명령한 것이다. 이는 경제사범들에게 수백억 원 벌금을 선고유예로써 면제해 주던 이전의 다른 판결에 비해 엄격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차라리 그때 통째로 봐주었다면 지금의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세상사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이후 지나치게 한 부분만 부각되다 보니 판결 하나가 한 판사의 삶 전체를 낙인찍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물론 장 판사에 대한 동정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변호사는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장 판사는 닮고 싶은 선배, 나중에 내가 나이 들어 저만큼 됐으면 싶은 선배였다.”고 했다. 40대의 한 지역 법관도 “당시 재판의 판단 근거는 분석하려조차 않고 향판제의 폐단을 운운하고 지역법관들을 토착세력과 어울리기나 하는 판사로 매도하는 식의 시선은 옳지 않다.”고 했다. 사실 지금은 다들 잊었겠지만 당시 판결에는 다른 사건과는 달리 하청업체들이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됐었다.
최근 장 판사의 자택에는 연일 기자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세간의 관심이 온통 쏠리다 보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청빈까지는 모르겠지만 문제의 아파트를 살 때만 해도 수억 대출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데도 마치 엄청난 비리나 저지른 양 마구 매도해도 되는 것일까. 서민들의 분노야 백번 이해하지만 그렇다 해서 한 개인의 인권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것일까.
이 글을 쓰기로 맘먹었던 엊그제 길거리에서 우연히 한 화가를 만났다. 한잔 같이 하다 보니 그가 장 판사와 동기동창인인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 오간 ‘카톡’ 문자를 보여주었다. “그때는 옳다고 여겼던 선택에 대해 지금에 와서는 자책도 하고 비난도 받곤 하는 일은 너무도 많다. 지금 잘못했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그때 잘했다고 추켜세우던 사람들이다. 그게 인심이니까.”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위로를 건네자 장 판사가 답을 보내왔다. “제가 존경하는 분들께 심려를 끼쳐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몰고 가는 데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이제 그 마음을 거둡니다. 제가 이승에서건 전생에서건, 어떤 작은 증거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그것이 아니라고 절규하는 사람의 말을 외면한 업보려니 생각합니다. 세상살이가 그런 것이려니 하고 지내겠습니다. 이제 법관으로서의 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았을 뿐입니다.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고…. 들판에는 새 풀이 돋아나고 수양버들이 벌써 여린 잎을 틔워 바람에 날립니다. 봄꽃들도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계절의 눈물겨운 순환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새로운 시간에는 새 의미를 찾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장병우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