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새벽(한국 시각) 4만 여명이 운집한 러시아 소치 피슈트 올림픽 스타디움. ‘ 러시아의 꿈’이라는 주제로 열린 소치 올림픽 개막식은 ‘문화의 나라’ 러시아의 부활을 알린 한편의 드라마였다. 주제 그대로 러시아의 모든 것을 압축해 보여준 개막식은 전쟁과 평화, 백조의 호수, 봄의 제전 등 문화콘텐츠로 채운 고품격 예술의 총체극이었다.

이날 기자의 잠을 확 깬, 개회식의 압권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중 3막 피날레였다. 오데트 공주가 마법에서 풀려나 백조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웅장한 크레센도로 임팩트있게 보여주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나타샤 로스토바의 첫 무도회’도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나타샤가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러시아도 국제무대에 당당하게 다시 나서겠다는 의지를 형상화 한 것이다. 무엇보다 문화강국을 향한 ‘러시아의 꿈’은 물량공세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공연에 출연한 연기자는 3000여 명. 개회식비용 도 런던 올림픽의 약 2700만 파운드(약 475억 원)를 훌쩍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러시아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올림픽 개막식의 ‘레전드’는 영국이다. ‘경이로운 영국’을 주제로 펼쳐진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윌리엄 세익스피어로 시작해 비틀즈의 ‘헤이 주드’(Hey Jude)로 마무리되는 3시간짜리 대서사극이었다. 총 연출을 맡은 영화감독 대니 보일은 ‘영국스타일’이 어떻게 세계와 호흡하고 있는지를 장편영화처럼 짜임새있게 풀어냈다. 문화강국으로서의 영국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 ‘문화개막식’의 전범으로 꼽힌다.

어디 올림픽 뿐인가. 이제 아시아게임,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개막식은 단순히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 아니다. 개최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나라의 문화적 상상력과 역량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런 점에서 런던과 소치의 성공은 201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하는 광주에게 많은 과제를 던진다. 이들 나라처럼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을 여력이 없는 만큼 ‘작지만 강한’ 개·폐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잘 알다시피 광주는 예향·의향·미향의 도시다. 무등산, 5·18 민중항쟁, 고싸움, 비엔날레 등 유·무형의 값진 자산들이 많다. 게다가 2015년은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개관하는 역사적인 해가 아닌가. 광주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에 걸맞는 컬쳐버시아드(Cultureversiade·문화U대회)를 치러낼 수 있다. 런던과 소치의 감동을 뛰어넘는, ‘광주의 기적’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