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면서 올해 읽었던 책들을 헤아려 본다. 관심분야에 너무 집중한 탓인지 미술관련 서적이 월등히 많아 살짝 아쉬움이 인다. 최근 미술전문 서적 뿐 아니라 미술교양서들이 다양해진 것도 ‘독서 쏠림’의 핑계가 될 것 같다.

얼마 전 다녀온 프랑스 파리는 미술과 문학, 철학이 나눠온 대화가 생생한 도시였다. 오래전부터 문학과 미술이 늘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고, 현대철학자들 또한 현대회화에 관한 비평을 발표하는 풍요로운 문화적 풍토를 갖고 있다. 시인 폴 발레리는 저서 ‘드가, 댄스, 데생’을 통해 드가론을, 사르트르는 ‘미학이론’에서 마티스와 자코메티를 논하고, 미셀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를 분석해 미술은 문학 철학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진화했다.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의 언급처럼 파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랑스의 수도일 뿐 아니라 예술계의 수도”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파리 한 복판, 세느 강을 사이에 두고 루브르미술관과 마주한 채 인상주의 미술이 집결되어 있는 오르세 미술관. 마침 ‘드가론’을 읽고 있어서인지 에드가 드가(1834∼1917)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드가는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출입하며 악사들과 무대와 분장실, 연습장, 무희의 일상 등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발레리는 “드가는 인간 형태에 가장 예민한 관찰자였으며 여인의 선과 태도의 가장 잔혹한 애호가였으며 가장 지적이고 가장 생각이 깊은 데생의 천재”였다고 찬미했다.

작품 ‘열네 살의 어린 무희’(1878∼1880년경)는 얇은 천으로 된 발레용 스커트를 입고 등 뒤로 손깍지를 낀 채 잠시 쉬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청동조각이다. 무희의 시선은 위로 향해 있지만 98cm의 어린 소녀여서 미술관을 오가는 관람자들과 눈을 맞추는 듯하다. 한 순간, 한 작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분주하게 다녔던 발걸음이 멈칫해진다. 문득 어린 무희처럼 동작을 멈추고 한 템포 쉬어가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던 게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든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