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한 장 넘겨보니/숫자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살아온 날들은 빈 껍질처럼/희로애락만 남겨놓고 저만치 흘러갔다/선물 받은 축복의 시간들/기쁘고 신나고 즐거워야 하는데 /막상 계란 열두 판을 받고 보니/흐뭇함보다는 겨울이라 그런지 마음이 시리다…”(한상숙의 ‘새해달력을 받고’중에서)

매년 이맘때면 누구나 새해 달력을 선물 받는 즐거움을 누린다. 며칠 전에도 기자가 근무하는 편집국으로 대학교와 기업체에서 달력을 보내와 하나씩 나눠 가졌다. 12개국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모 기업의 달력은 순식간에 동났다. 간편하게 일정을 체크할 수 있는 휴대전화 때문에 달력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을 설계하고 기억하게 하는 ‘아날로그 감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자 역시 달력 날짜 밑에 일정이나 계획을 적는 게 더 편한 ‘구식’이다. 그러다 보니 집이나 사무실 책상에는 손때가 묻은 달력이 서너 개나 된다. 그중에서도 올 한해 가장 가까이했던 건 거실 장식장 위에 놓아둔 사진작가 김영갑의 캘린더다. 올 초 제주도의 두모악갤러리에서 구입한 이 달력에는 지난 2005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김씨가 근 20년 동안 카메라 앵글에 담은 제주도의 비경들이 펼쳐져 있다. 한 장 한 장 달력을 넘길 때마다 제주도의 수려한 풍광을 즐기는 덤을 누렸다.

사실 달력 속 풍경들은 메마른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청량제 역할도 한다. 이런 이유로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담은 화가들의 작품은 달력의 소재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올해는 경기불황 여파로 지역작가들의 2014년 ‘달력특수’가 거의 실종됐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의 ‘노스탤지어-남도작가 12인 특별전’(12일∼22일)의 출품작들을 모아 제작한 달력이 주목받고 있다. 달력 속에는 강연균·강운·김대원·김영삼·서기문·손봉채·손장섭·우제길·이이남·한희원·황영성·황재영 등 지역작가 12명의 작품이 담겨 있다. 작가들의 예술적 정서나 상상력의 원천이 된 고향, 가족의 소중함, 과거에 대한 그리움 등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아마도 달력을 받아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남도를 보며 갑오년을 설계하는 ‘행복한 고민’을 할 것이다.

이처럼 새해 달력은 늘 희망과 설렘, 목표와 다짐으로 풍성하다. 하지만, 달랑 한 장만 남은 이맘때가 되면 후회와 탄식이 배어난다. 연초에 꿈꿨던 장밋빛 미래는 가물가물할 뿐이다. 언제부턴가는 아예 ‘습관적으로’ 헌 달력을 떼고 새 달력을 건다. 2014년 캘린더의 빈 칸에 무엇을 채울지, 한번쯤 생각해보시길.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