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암스는 “추억은 음악 속에 있다”고 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우연히 듣게 되는 노래 한 곡으로 지난 시절의 기억이 선명하게 다가왔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여고시절 클래식 애호가였던 영어선생님 덕분으로 서양고전음악에 입문, 당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나 ‘겨울 나그네’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지적인 여학생’을 꿈꾸며 겉멋으로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했으나 이제는 인생을 실어가며 그 음악과 함께 한다.

예년보다 일찍 폭설이 내린 한 겨울 속에 서니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듣고 싶어진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그네의 방랑을 노랫말에 담은 가곡 ‘겨울 나그네’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겨울 여행’이라 한다. 그 까닭에 ‘겨울 나그네’를 듣는 것은 한없이 쓸쓸한 마음으로 황량한 그 어딘가를 홀로 여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작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1818년 작)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음반 커버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은 여행상품 광고 이미지나 철학도서 커버 이미지로도 자주 등장한다. 격랑의 파도를 눈앞에 두고 가파르게 솟은 바위 위에 한 남자가 뒷모습을 보이며 서있다. 가없는 공간 속에서 절대 고독과 대면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 역시 “자연과의 교감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서양화에서 근경에 뒷모습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보는 이의 시선을 화면에 끌어들여 관람자의 공간을 회화의 공간과 연결시키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이 오래도록 함께하는 이유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