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배추 포기 묶어주며 보니/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배추의 마음은 뭐가 다를까…”〈나희덕 작 ‘배추의 마음’중에서〉

올해 배추농사도 풍년이라는 소식을 엊그제 들었던 것 같은데 벌써 김장철이다. 추워진다는 기상 예보에 지난 주말 김장준비를 한 가정이 많았는지 새언니, 곡성 친구, 앞집에서 먹음직스러운 김장김치를 보내왔다. 생각해보면, 김장은 예나 지금이나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왁자지껄한 축제이자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이 스며있는 소중한 문화다. 우리의 ‘김장 문화’가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가 곧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고 하니 자부심이 느껴진다.

우리가 김치를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고려 때 문헌인 ‘향약구급방’에 처음 배추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무를 주로 먹었으며 배추를 먹기 시작한 역사는 그다지 깊지 않다. 1700년대에 들어서 중국에서 결구배추가 들어온 이래 배추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고 고추로 김치를 버무리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라는 게 역사적 기록이다.

조선시대 민화인 ‘채소도’는 그림 속에서 드물게 배추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배추는 사대부들의 문인화에서는 결코 등장할 수 없는 소재로 서민들의 진솔한 감성과 자유로운 미의식을 표현한 ‘민화(民畵)’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흔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예술”이라 정의되는 민화는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우리 민화의 가치를 재조명해 이름지어진 것이기도 하다. 민화는 단순성과 장식성을 오가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최근 들어 현대미술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

<사진 제공=풀무원 김치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