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쓸쓸한 산 오르는 경사진 돌길/하얀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보이네/저녁 단풍 숲이 좋아 수레를 멈추니/서리 맞은 잎은 이월의 꽃보다 붉구나” (두목(杜牧) 작 ‘산행’)

푸르던 잎이 낙엽 되어 흩날리는 계절이다. 언제 생명의 환희에 찬 봄을 좋아했던가 싶게 이 가을이 변덕스러운 가슴에도 깊게 파고든다. 가을 거리를 지나다가 샛노랗게 물든 가로수 은행나무를 만나니 옛 시인을 본떠 차를 멈추고 싶다. 가던 길 멈추고 한 줄금 바람에 우르르 나뭇잎 떨구는 은행나무 아래에 서서 온 가을을 맞이한다. 가을의 절정 속에서 대지를 덮고 있는 마른 낙엽을 밟으며 아무 이유 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한국화가 목운 오견규(1947 ∼ )의 작품 ‘추성전화’(秋聲傳話·2012년 작)는 가을 한 가운데 서 있는 우리들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가을빛 물든 은행나무 앞에서 누군들 그대로 지나칠 수 있겠는가. 지금은 귀해져서 보기도 힘들어진 공중전화 부스 안 사내는 누구와 통화하고 있는 걸까? 조금은 예스러운 ‘가을 전화’ 속 풍경이 낯설지 않다.

중국 북송 때의 화가 곽희의 언급처럼 ‘그림은 소리 없는 시이고, 시는 형태 없는 그림(畵是無聲詩 詩是無形畵)’이라더니 목운의 작품은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11월의 나무에 대해 붓으로 시를 그렸다. 시와 그림은 표현기교는 다르지만 화가의 정서와 시인의 정서가 다르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 우리 동양화의 시화일체사상(詩畵一體思想)을 그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작품 속으로 들어가 만추의 시심을 누리고 싶게 만드는 것이 그림의 힘일 것이다. 목운은 남종화의 대가 아산 조방원선생의 애제자로 문기 있는 그림을 그리면서 시정어린 감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묘사해오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