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푸른 바다가 아니지/마음 속에 푸른 바다의/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청년이 아니지//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아직 사랑을 모르지...” 〈정호승 ‘고래를 위하여’중에서〉

청년문화의 아이콘,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1945∼2013)하면 내겐 소설로도 영화로도 ‘고래사냥’이 먼저 떠오른다.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에 감정이입했던 우리 젊은 날이 그의 문학과 영화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최인호로 인해 우리 가슴 속에 ‘신화처럼 숨 쉬는 동해바다 고래’는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는 삶이자 기원이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그림인 국보 제285호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태고의 동해바다 고래를 만날 수 있다. 이 땅의 최초의 그림이자 조각인 반구대 암각화에는 호랑이 사슴 등 육지동물과 고래를 비롯한 해양성동물, 사람, 배 등 선사시대 생활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귀신고래와 함께 돌고래, 향고래, 북방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범고래 등 다양한 고래들이 등장하고 날카로운 미늘창에 찔려 괴로워하는 고래도 묘사되어 놀라움을 준다. 고래그림 중 ‘귀신고래’는 목 아랫부분에 독특한 모양의 깊은 홈이 그 종을 구분하게 한다. 몸통은 정면을, 입의 형태는 측면을 표현해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입체적인 시각은 지금 보아도 ‘현대적’이다.

한국의 암각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화가 김호석은 ‘그림으로 쓴 역사책 반구대 암각화’에서 “반구대 암각화는 한국미의 원형과 시원”이라 말하고 긴 세월 잘 견뎌온 암각화가 최근 빠르게 훼손되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다.

암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그 많던 고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고래처럼 최인호는 떠났지만 우리 마음속에 ‘청춘의 고래’를 새겨준 그의 문학은 영원히 살아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