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최종 목표가 ‘이기는 것’이라면 디자인의 최종 목적은 “그래서, 나는 샀다”라고 한다. 같은 기능과 용도라 해도 특별한 가치와 감성을 더해 새로운 디자인이 입혀졌을 때 눈길을 사로잡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디자인은 물건과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지만 때로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새로운 문화가 된다.

5일 개막식을 갖고 59일간의 여정을 시작하는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디자인이 참 착하고 편하고 달콤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과거가 현대와 만나면서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하고 라탄, 대나무, 댕댕 등 자연소재가 산업화되는 슬로 프로덕션 등은 디자인의 미래세계를 전망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슴이 뛰었다.

남도 화맥의 전통을 상징하는 남종화의 대가 소치(小痴) 허련(許鍊·1809∼1892)의 ‘산수도’도 디자인비엔날레를 빛내준다. 전통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제안한 ‘동양화를 모티브로 한 4인의 인테리어전’에서 소치의 작품이 등장한다. 소치의 산수도를 재드로잉하여 한지에 디지털 프린팅해 걸고 영상에 비친 달과 정겨운 연못을 더한 작품이다. 간결 소박미의 정수인 남종화가 현대 디자인과 접목해 만들어내는 단아하고 깊은 미감은 관람객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승 추사로부터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를 강조한 남종화를 배워 당대 최고 명성을 떨쳤던 소치의 화풍은 아들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의재 허백련 등 명가 5대에 걸친 화맥을 형성했고,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창조적 모티브로 이어지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