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현실 밖에 보지 않는다”

카이사르가 ‘내전기’에서 언급했던 말이다. 같은 의미로,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또한 우리 보통 사람들인 것 같다. 오늘 우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그런 것이 아닐까? 불행한 역사를 만나서 한 평생 피맺힌 절규와 한스러운 세월을 지나왔고 그러고도 배상받지 못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너무 아프고 처절해 차마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지난 주 개봉한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을 비롯, 위안부 기림비 건립과 ‘평화의 소녀상’ 제막, 그림, 사진, 연극 등에서 ‘위안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관심이 이어지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어진다.

‘일본군 위안부’를 그린 그림인 일본 여성화가인 도미야마 다에코(1921∼ )의 ‘가룽간 제사의 밤-죽은 사람의 혼이 돌아오는 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룽간 제사는 조상들의 영혼이 살아있는 자들을 찾아와 위로한다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전통 제의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겹겹’ 쌓인 해골과 그 아래 포개져 있는 일본군 위안부의 나신들, 그리고 일본의 패잔병들을 통해 일제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지난 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윤범모교수(가천대)가 기획한 서울전에서 이 작품을 발표한 도미야마는 “나 자신 무녀가 되어 그 여인들의 가슴 속 깊이 맺힌 한과 슬픔을 그렸고, 이는 혼을 불러 일으켜 세우는 초혼의 노래”라고 진술한 바 있다.

양심적인 일본인으로 위안부와 강제 징용자들을 형상화하면서 일본에 전쟁의 책임을 추궁하고 참회와 반성을 촉구하는 도미야마의 작품들은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금기되었다. 도미야마의 그림을 보면서 국적과 이념을 넘어서 역사의 진실을 발언하고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예술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