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씨뿌리는 이십대도/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고정희 ‘사십대’중에서〉

이 나이가 되니, 나이 서른이나 마흔의 성장통을 노래한 시인들이 다소 감정과잉으로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서른 무렵은 ‘그저 사느라고’ 바쁘게 지나가는 시절이 아니었던가. 예민한 촉수를 지닌 예술가들에게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나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폴 고갱(1848∼1903)을 모델로 한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육 펜스’에서 주인공 은 마흔이 되던 해 홀연히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예술을 향한 긴 여행을 떠난다. 실제로, 주식 중개인이었던 고갱은 서른 다섯에 직업화가의 길을 감행했다.

지난주 관람했던 서울 시립미술관의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전’에서 마주한 것은 오랜 망설임 끝에 먼 여정을 나섰던 ‘고갱의 고뇌’였다. 예술에 매혹됐던 고갱은 20여 년에 걸쳐 파리에서 브르타뉴, 타히티, 마르게사스제도 등 미지의 세계를 찾아 헤맸다. 고갱이 꿈꾸었던 것은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지상 낙원’이었으며, 알고 싶었던 것은 ‘생의 본질’이었다.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그 답이 될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고갱은 혼신의 힘을 쏟아 이 그림을 그렸다. 폭 4m에 달하는 벽화양식의 거대한 이 작품은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는 운명을 단계적이고도 서사적으로 묘사하면서 고갱이 사색했던 근원적인 질문을 오늘 우리에게도 되묻고 있다.

고갱의 숙명적 물음 앞에서,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전시장 안의 수많은 관람객들이 그러했듯이 잠시 동안이나마 “내가 누구인지” 생각에 잠겨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