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 광주극장에서 영화 ‘마리 크뢰이어’를 관람했다. 마리 크뢰이어(1867∼1940)는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이어(1851∼1909)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뮤즈이자 아내다. 과문한 탓에 영화를 통해 P.S 크뢰이어를 처음 만났다. 영화 속 크뢰이어는 마리와 함께 있는 동안은 빛나는 화가였지만 마리가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떠난 후엔 예술도 육체도 시들어 버린다. 영화의 긴 여운 속에서 크뢰이어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빛의 화가 크뢰이어는 덴마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렸던 아내 마리만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마리의 모든 것은 지금도 그의 그림 속에 살아있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듯 ‘스카겐의 여름 석양’은 덴마크 최북단 스카겐 바닷가에 서있는 마리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살짝 옆으로 얼굴을 돌린 마리의 고혹적인 모습에 북구의 푸르른 노을빛이 반사되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뮤즈는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낳은, 세상의 온갖 예술을 담당하는 여신. 그 뮤즈의 화신들이 예술가의 영혼을 자극해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한다.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 20세기 유럽 지성들을 매혹시켜 정신적으로 고양시켰던 루 살로메. 폴 엘뤼아르, 에른스트, 달리 등 예술가의 잠재된 영혼을 뒤흔들었던 갈라. 우리에겐 시인 이상의 아내였다가 사별 후 김환기와 재혼한 김향안도 아내이자 동지이며 뮤즈로 손꼽힌다. 예술가의 뮤즈들은 마리처럼 아름다웠는가 하면, 살로메나 김향안처럼 그 자신 작가이자 예리한 비평가로서 지성과 열정을 지니기도 했다.

크뢰이어의 뮤즈는 행복했을까? 영화 속 마리는 그의 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고 ‘다른 세계를 찾고 싶은 동경’으로 크뢰이어를 떠난다. 웬일인지, 같은 여성으로서 마리가 이해되기보다 사랑을 잃고 다 놓아버린 크뢰이어에게 더 연민이 느껴진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