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생전에 자신의 글쓰기가 ‘증언의 욕구’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작가는 자전적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한국전쟁을 겪었던 과정과 신산스런 피난살이, 그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이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 사람들을 전쟁이 얼마나 엄청난 힘으로 파멸시켰는가를 그려냈다.

‘휴전 60주년’을 맞이하는 현 상황에서 6·25전쟁은 미술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헤아려 본다. 비평가들은 한국미술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전쟁을 담은 미술작품이 극히 적다는 점을 꼽는다. ‘세계대전과 유럽미술’의 관계에 대비해 보면 ‘6·25전쟁과 한국미술’의 관계는 사뭇 다르다. 전후 유럽에서 쏟아져 나온 전쟁미술을 비교해보면 그 지적이 더욱 실감난다.

‘반전(反戰) 미술’하면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20세기의 두 대전을 경험한 화가였던 케테 콜비츠(1867∼1945)가 석판화로 작업한 작품 ‘전쟁은 이제 그만’을 떠올리게 된다. 머리털이 뒤로 젖혀진 젊은 남자가 오른손을 번쩍 들고 반전을 외치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어떤 명분의 전쟁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결기가 느껴진다. 예술가가 경험한 삶의 고통이 처절할수록 작품은 더 강렬해지는 것일까? 1차 대전에서는 아들이, 2차 대전에서는 또 다시 손자가 전사하는 비운을 겪었던 콜비츠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반전 평화에 대한 바람으로 일관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목판화 연작으로 고발했고, 그 연작 판화는 루쉰(1881∼1936)이 그림으로 대중을 각성시키고자 주도했던 중국 목판화운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리얼리즘계열의 민중미술이 두드러졌던 80년대 초 그녀의 작품들은 한국에도 소개됐는데, 당시 강렬했던 인상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반전의 불꽃을 피웠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