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雨中에 있다/모든 깃발을 내리고 서 있다/오지도 가지도 못하는/적신호 앞에서/바다와 같이 밀려올/그 억센 파도를 생각 한다/인생은 그 때 또 있는 것/지금 우리는 雨中에 있다”〈박봉우 ‘지금은 비오는 중’〉

칠월이 오기 전에는 여름이라 여기고 싶지 않지만 올 유월은 시작부터 폭염이다. 50년 새 보름이나 빨라졌다는 여름 더위 탓일까. 그 어느 때보다 장맛비가 반갑다. 비가 내리니 과열된 머리도 가슴도 벌써 시원해진다. 창 밖 거리의 우산 행렬이 비 내린 날의 서정을 더해주는 한 폭의 그림 같다.

빛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잡고자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인상주의자들은 ‘외광파’답게 햇살 아래 양산을 멋스럽게 든 여인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인상주의의 주요 인물이었던 르느와르(1841∼1919) 역시 양산 든 여인을 비롯, 비 내리는 날의 파리 풍경도 여인들의 패션과 함께 섬세하게 그림으로 묘사하곤 했다. 르느와르는 파리의 풍속을 그렸고 여인들은 다시, 르느와르의 그림에서와 같은 차림을 했다고 한다.

르느와르가 ‘외광’에서 벗어나 빗속의 ‘우산들’을 그린 것은 의외다. 빛의 찰나적인 느낌을 묘사하면서 표현되는 윤곽선의 흐릿함 대신 새로운 기법을 찾기 위해 선의 필치를 강조한 점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굴렁쇠를 든 아이, 바구니를 든 젊은 여자와 그녀를 보고 있는 신사, 행인들과 우산들의 배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빗물과 더불어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듯하다.

열 네 살의 나이에 도자기 위의 작은 꽃그림으로 그림을 시작, 만년에 류머티즘으로 구부러지고 마비된 손에 붓을 비끄러매고 그림을 그렸던 르느와르. 자신의 고통은 아랑곳 않은 채 젊음과 행복을 가득 채운 그의 작품 속 우산들 위로 경쾌한 빗줄기가 떨어지는 듯하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