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적 감수성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풍광은 언제나 그 때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움의 절정인 것 같다.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이 아니더라도 모내기를 막 마친 후의 초록 들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머지않아 장맛비가 내리면 그 무논은 건강한 자연의 에너지로 분주해질 터다. 망망대해 같은 논을 공중부양 하듯 휘젓고 다닐 소금쟁이들이 눈에 선하다.

이른 봄 심었던 모종들을 솎아주러 다녀온 시골 텃밭 역시 이글이글 햇빛 아래 생명의 환희로 가득했다. 김매기 전, 잡초에게도 “여기는 니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며 양해 구하는 법을 농부들에게 배우며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시간. 보랏빛 가지꽃, 노란색 오이꽃이 내 눈 속 깊이 들어온다.

우리 역사상 대표적인 현모양처이자 뛰어난 여류 화가이기도 했던 신사임당(1504∼1551)의 그림에도 예쁜 가지와 오이그림이 있어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산수화, 묵포도도, 화조화, 초충도를 잘 그려 거의 전설적인 명성을 낳았던 사임당의 ‘가지와 곤충도’(십곡병풍 중 두 번째 폭)에는 중앙의 화폭에 가지 두 그루, 가지의 양쪽에 한 마리씩 배치된 흰 나비와 빨강 나비가 날개를 펴고 땅위에는 메뚜기 등 곤충이 어우러져 있다. 옛 그림이지만 단순한 소재, 간결한 구도, 섬세하고 여성적인 표현이 지금 보아도 현대적 감각이다. 사임당의 또 다른 그림인 묵포도도와 ‘초충도수병’중 가지그림은 우리나라 지폐 5만 원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사임당은 율곡 이이와 같은 대학자를 아들로 두어서인지 율곡 성리학을 계승한 우암 송시열, 수암 권상하에 이르는 당대 학자들이 사임당 그림을 찬미하는 발문을 남기기도 했다. 율곡의 어머니라는 선입견에 크게 지배받아 오히려 올바른 평가가 흐려졌다는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사임당 예술이 들여다볼수록 ‘높고 멋스럽고도 눈부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