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사람들도/굳센 사람들도/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중에서〉

오월이 가정의 달이어서인지 가족의 힘, 아버지의 귀환 등을 다룬 연극, 영화, 소설이 대세다.

그림에선 어떨까? 속정 깊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림으로 남긴 이로 다산 정약용(1762∼1836)을 꼽고 싶다. 18년간의 강진 유배생활 동안 50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긴 다산. 후대 학자들은, 다산의 귀양살이는 개인에게는 절망이었으나 우리 학술계를 위해서는 ‘별빛처럼 쏟아진 축복’으로 여긴다.

매 순간 시대적 모순을 들여다보고 민초들의 삶을 함께 아파한 대학자 다산이었지만 자식 앞에서는 조바심을 내던 아버지였다. 딸이 그리워 시를 쓰고,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아버지로 인해 벼슬길이 막힌 두 아들을 염려했다.

다산의 이러한 부정(父情)을 담은 그림이 ‘매조도(梅鳥圖)’이다. 비단 위에 그린 ‘매조도’는 그림과 시를 안배한 것으로 오른쪽에서 뻗어 내린 매화가지에 두 마리의 참새가 앉아있는 봄날의 시정을 담아낸 예쁜 그림이다.

그림 옆에 작은 글씨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연유도 밝히고 있다. 어느 해인가 다산의 부인이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빛이 바랜 헌 치마 여섯 폭을 보내온다. 다산은 이것을 잘라 네 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여 바른 사람이 되라는 당부의 글을 엮어 보내고 남은 치마폭에는 시집간 딸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두 마리의 새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즐겁게 봄날을 노래하듯 그렇게 딸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던 아버지 다산의 애틋한 염원이 잔잔하게 전해진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