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불 밝힌 연등 행렬을 보니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온 것 같다. 평소 미망과 미혹 속에서 헤매다가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 앞에 서면 ‘참 나(眞我)’를 찾고 싶다는 분발심이 문득 되살아난다. 부처님은 확실히 우리 같은 중생들에게 인간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을 것이다.

언젠가 석탄일에 강진 무위사(無爲寺)에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많이 변했을 터이지만 이 절집은 큰 행사 중에도 소담하고 한적했다. 구석구석 짚어봐야 할 문화유산도 많았고 무엇보다 극락보전 벽화를 만났던 것은 지금도 마음 들뜨게 한다. 무위사 극락보전 안에는 별도로 세워진 흙벽 위에 ‘아미타 삼존불과 후불벽화’, 그 후불 벽 뒷면에 그려진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가 있다.

‘수월관음도’라고도 불리는 ‘백의관음도’는 1476년도에 조성된 것으로 당당한 체구의 관음보살이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넘실대는 바다 위에 연잎을 타고 서서 두 손으로 각기 정병과 버들개지를 살짝 쥐고 있다. 종교화로서 독보적인 미의 세계를 창조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꼽히는 ‘고려 불화’. 그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선 초기 불화의 새로운 특징을 살리고 있는 이 벽화는 단숨에 그어 그린 먹선의 유려한 맛이 걸작의 풍미를 드높인다. 현대의 많은 수묵 화가들이 감탄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월에 찾았던 무위사가 그 어느 때보다 뜻 깊은 것은 강진, 해남 사람들의 수륙재(水陸齋)를 지냈던 곳이기도 한 까닭이다. 수륙재는 전쟁 등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이승을 떠나 육지와 물 위를 떠도는 모든 영혼을 달래면서 적까지도 포용하고 위로하는 불교 의식이다. 관음보살과 무위사의 수륙재처럼 품 넓은 자비가 넘치는 오월을 기원해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