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눈부신 신록을 무엇이라 표현할까. 산들거린다고 해야 할까. 향기롭다고 해야 할까. 대기의 알맞은 온도는 누가 또 이렇게 맞추어 놓았을까. 오월의 아름다움은 확실히 인간의 영역 밖인 듯 싶다.

며칠 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에 다녀왔다. 나무와 꽃이 아직 어리긴 했지만 햇살과 바람이 한데 어우러져서인지 자연의 환희로 찬란했다. 정원이 오랜 시간의 축적 없이도 기획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순천만’이라는 자연의 선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크고 작은 정원 사이를 정원의 철학자이기도 했던 헤르만 헤세(1877∼1962)와 함께 거닌다.

헤세는 작가로서 글을 썼던 시간만큼 많은 시간을 정원 가꾸기에 보냈다. ‘화가 헤세’이기도 해서 39세 되던 해부터 독학으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00여점의 수채화를 남겼다. 수채화 ‘포도나무가 있는 정원’은 헤세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스위스 로가노지방 몬타뇰라의 붉은 집인 카사 로사의 정원을 그린 그림이다. 포도넝쿨을 지나 경사진 잔디밭을 내려가면 갖가지 색채의 꽃과 딸기, 약초, 채소 등을 심은 화단이 펼쳐진다. 담백한 수채화는 헤세의 글이 주는 느낌 그대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조가 잔잔하다.

헤세는 풀과 나무가 가르쳐준 이야기를 담은 책 ‘정원 일의 즐거움’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헤세는 생성을 기다리는 설렘, 생명이 움트는 기쁨, 흙으로 돌아가는 소멸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순환을 글과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헤세의 글을 따라가노라면 땅에 무릎 꿇고 허름한 작업복에 밀짚모자를 쓴 채 해바라기에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이 가까이 다가온다. 헤세에게 정원은 혼란스럽고 고통에 찬 시대에 영혼의 평화를 지키게 해주는 장소였던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