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작가였던 세익스피어와 세르반데스는 1616년 4월23일 같은 날 세상을 떠난다. 이 날을 기념한 것이 1995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책의 날’. 우연인지 세익스피어의 ‘햄릿’과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는 세계문학사에서도 늘 같이 붙어 다닌다.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가 사람을 사색가 ‘햄릿형’과 행동가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한 이래 두 인물은 지금까지 유형화된 한 짝이다.

서양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이자 가장 많이 공연된 햄릿. 돈키호테 역시 최근엔 ‘맨 오브 라만차’등 뮤지컬로 제작 공연되어 웃음과 감동을 준다. 유명한 고전답게 햄릿의 주요한 장면은 많은 화가들의 작품 모티브가 되었고, 돈키호테 또한 들라크루아, 코로, 오노레 도미에 등 주로 프랑스 화가들이 회화의 주제로 삼았다.

프랑스의 정치적 격동기를 풍미한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는 ‘돈키호테’를 소재로 유화 29점과 드로잉 49점을 그렸다. 작품 ‘돈키호테’는 백마 로시난테 위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깡마른 이상주의자 돈키호테를 그린 것으로 척박한 현실에 맞서는 이의 의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평생 동안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섰던 전사로 이름난 도미에는 주로 풍자화를 그렸지만 그가 낳은 ‘돈키호테’는 본격회화에 대한 열정의 산물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고”자 했던 기사 돈키호테는 꿈꾸지 못하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한때, 단순화된 이분법 앞에서 ‘나는 고뇌하고 주저하는 햄릿형’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내안에 늘 망설이는 햄릿도, 과감히 결행하는 돈키호테도 함께 살고 있음을 느끼지만.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