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2∼1910)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문장이자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불행한 가정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안나 카레리나’는 토마스 만의 표현대로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닌, 농노제 붕괴에서 러시아 혁명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위대한 ‘사회 소설’인 것이다.

얼마 전 영화 ‘안나 카레리나’가 개봉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새삼 그 명작의 감동이 밀려와 한동안은 누구와 만나도 ‘안나 카레리나’ 이야기만 하고 싶어졌다. 감정과잉일까, 그 감흥이 달아날까봐 톨스토이의 옛 책들을 다시 펼쳐든다. 그 책 속에서 만난 톨스토이의 초상화가 더욱 반갑다.

톨스토이는 화가들이 도전하고 싶은 초상화의 모델이었던 듯싶다. 수많은 화가들이 문학인의 초상으로서 톨스토이를 그렸으며 19세기 말 러시아 리얼리즘 회화의 거장인 일리아 레핀(1844∼1930)은 30여년이 넘는 세월을 톨스토이와 교유하면서 그의 초상을 수십 점 그렸다. 레핀은 살아있는 신화로서의 대문호가 지닌 정신성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밭을 갈거나, 기도하는 톨스토이 삶의 여러 단편들을 연작으로 남겼다.

작품 ‘숲 속에 누워있는 톨스토이’는 톨스토이가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 책을 펴들고 쉬고 있는 소박한 모습이다. 레핀은 더운 여름공기, 푸르른 나뭇잎,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든 햇살, 그 빛이 군데군데 그를 비추는 모습에서 대자연의 생명력과 작가의 내적 에너지를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대지에 온 몸을 맡긴 톨스토이의 휴식을 담은 레핀의 초상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조용히 깊어지는 톨스토이의 내공이 전해져 온다.

〈광주비엔날레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