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고온’으로 진군하듯 밀려들던 봄이 요 며칠 꽃샘추위에 움츠러든 품새다. 얼마 전부터 가꾸기 시작한, 시골 텃밭을 때맞춰 일구는 일은 봄이 되자 더욱 분주해진다. 씨앗을 사러 종묘상엘 갔더니 주인은 “요즘은 모종의 시대”라며 씨앗보다 모종을 권한다. 그래도 씨 뿌리고 싶은 마음에 씨앗 몇 봉지 사들고 와 두둑을 높이고 고랑을 판 작은 텃밭에 채소씨앗을 정성껏 뿌렸다.

씨앗은 언제나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토록 작은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올 때의 그 생명력을 무엇이라 할까. 씨앗이 펼쳐져 나무가 되었다가 그 나무가 다시 합쳐져 씨앗이 되는 원리는 여전히 내게 기적이다. 봄볕과 붉은 황토밭, 바람과 사람이 빚어내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역시 내게 더없는 절경이다.

‘만종’‘이삭줍기’ 등 대표작을 통해 우리에게 농민화가로 알려진 장 프랑스와 밀레(1814∼1875)도 일찍이 ‘씨 뿌리는 사람’을 그렸다. 프랑스 농촌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파리로 나갔다가 다시 전원인 바르비종으로 돌아온 밀레는 오전에는 농부와 함께 밭을 갈았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렸다. 바르비종으로 돌아와 처음 완성한 농민화가 ‘씨 뿌리는 사람’이다.

여명일까, 황혼일까. 어슴프레한 색채를 배경으로 투박한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자가 씨앗들을 흩뿌리면서 언덕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가파르게 기울어진 지평선이 역동감을 더해주면서 일과 함께 자연에 대한 감동을 더해준다. 저 멀리에는 바쁘게 소를 모는 다른 농부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밀레의 예술 뿐 아니라 삶까지 존경했던 고흐는 특히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주제에 열중해 같은 제목의 그림을 수십 점 다시 그렸다. 고흐는 밀레의 그림 속에서 겸허하게 노동하는 인간에 바쳐진 숭고한 사랑을 보았던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