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디만치 왔을까? 해마다 이즈음이면 확신하지만 “봄은 땅 밑에서부터 오고 가을은 하늘로부터 내려 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봄은 겨우내 추위를 견뎌내고 땅을 ‘쑤욱’ 뚫고 올라온 ‘쑥’이 자란 만큼 가까워지는 듯하다. 봄은 무엇인가를 땅에 심고 싶고, 캐고 싶게 한다. 내 마음에도 농부의 마음처럼 캐고 싶은 본능이 생긴 건지, 지난 주말 다녀온 시골 밭두렁 사이 고개 내민 어린 쑥 앞에서 마냥 다급해졌다.

기념비적인 자화상으로 이름난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도 벼슬길에서 소외되어 해남으로 낙향한 뒤 농심에 젖었을까. 공재가 해남 녹우당에서 생활하면서 그린 풍속화는 여섯 점 가량으로 그 작품들에는 농촌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에 보내는 그윽한 시선이 있다. 공재의 ‘채애도(採艾圖)’는 쑥을 캐는 두 여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화면 전체에서 푸릇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망태기와 칼을 든 여인은 허리를 굽혀 막 쑥을 캐려하고, 그 옆 여인은 뒤돌아보며 쑥을 찾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먼 산과 왼쪽으로 날아가는 한 마리 제비가 무한한 공간에 활력을 준다.

공재는 조선 후기 풍속화의 태동을 예고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힌다. 특히 사대부 출신으로서 민중의 삶, 일하는 여성을 직접 회화적 대상으로 포착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인간 삶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들 인간사(人間事)를 이토록 예술성 드높게 구현하기는 힘든 일이었을 것 같다. 공재가 있었기에 조영석, 김두량, 강희언, 김홍도로 이어지는 ‘조선적 양식’의 풍속화가 후일 화려하게 만발했다.

아직은 텅 빈 들녘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따스해진 봄 햇살에 천지가 봄 향기로 가득해지면 나물 캐는 여인들의 풍경도 그림처럼 등장할 것이다. 봄은 어느새, 이만치 우리 곁에 와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