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는데도 이어졌던 한파 특보와 눈보라가 계절감을 잃게 한다. 그래도 이 겨울 속에서 봄이 느껴지는 것은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매화꽃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매화가 꽃피는 것을 보면 기적 같다. 옛 선비들이 매화가 핀 경치를 찾아 떠나는 ‘탐매’여행을 즐긴 까닭도 언 땅, 마른 가지에서 살아나는 생명의 힘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기(田琦 ·1825∼1854)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꼭 요즘 분위기다. 잠시 따스한 봄 기운에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매화, 그 며칠 사이로 눈이 내렸던 듯 온 천지에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한 겨울과 이른 봄이 공존하는 깊은 산골짝 작은 집에 한 선비가 앉아있다. 선비는 서재에서 읽던 책을 덮고 매화를 보다가 곁에 있는 피리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다리 위에는 붉은 점으로 묘사된 이가 거문고를 메고 벗을 찾아간다. 천옥에 갇힌 듯 절경 속 완벽한 단절은 벗의 방문으로 활기를 띤다. 매화꽃잎들은 곧 있으면 연주될 친구들의 이중주로 가장 화사한 봄을 맞이하리라.

전기는 약포를 경영하였던 중인 출신으로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웠다. 체구가 크고 빼어나며 인품이 그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추사파 중에서도 사의적인 문인화의 경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묘사했던 인물로 추앙받았으나 29세로 요절해 참으로 안타깝다.

한국미술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자연, 봄, 매화, 벗, 음악... 더불어 즐기고픈 것들이 한 화면에 다 들어있어서였던 것 같다. 봄이 오면 옛 선비처럼 ‘탐매’행을 하고 싶다. 활짝 핀 매화꽃이 봄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