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페터 한트케는 폴 세잔이 그린 생트 빅트와르산에 사로잡혀 그림 속 풍경을 찾아나선다. ‘세잔의 산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기행집은 그렇게 수개월간 화가의 영지에서 그 발자취를 더듬어간 기록이다. 한트케는 세잔의 산을 따라 걸으며 화가의 예술을 탐색해가는 여정에서 자신이 추구해야할 문학의 길도 새로워졌다고 고백한다. 생트 빅트와르산은 지금도 전 세계인들이 세잔의 그림 속 감동을 느끼기 위해 몰려드는 공간으로 이름나 있다.

폴 세잔(1839∼1906)은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에서 태어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에 머물면서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생트 빅트와르산’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이 지역의 많은 화가들이 예찬하고 숱하게 작품으로 묘사해 왔듯 세잔도 대략 20년 동안 여러 각도, 다양한 장소에서 쉬지 않고 이 산을 그렸다. 세잔은 생트 빅트와르산을 충실한 재현의 공간 너머 존재를 확인하는 공간으로 드러나게 한다. 그 결과 이 산은 근대예술의 핵심적인 상징이 되고 세잔은 회화사에 전설을 남긴다.

작품 ‘생트 빅트와르산’(1905∼1906년 작)은 화가의 아틀리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화가의 아틀리에서 생트 빅트와르산까지를 ‘세잔의 길’이라 하는데 그 길로부터 펼쳐지는 전경의 벌판은 병렬적인 선명한 붓 터치에 의해 형상화되어 있다. 우뚝 선 산, 주변 풍경과 이웃하는 아름다움이 평화롭고도 아련한 느낌이다.

생트 빅트와르산은 무등산과 자주 비교된다. 무등산 역시 지역의 예술가들이 수없이 조형적으로 재현해왔다. 생트 빅트와르산이 제2차 대전시 레지스탕스 단원들이 저항활동을 하던 역사적인 장소였다면 무등산은 광주의 오월과 격동의 세월을 온 몸으로 보듬어 주었던 존재다. 최근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예술적 이미지로서의 무등산에 대한 기대 또한 높다. 어느 날, 페터 한트케처럼 무등산을 그린 화가의 화집과 지도 한 장만을 들고 ‘불멸의 산’ 한 가운데로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