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책은 조선시대에 당파 싸움에 따른 국력 소진을 막기 위해 나온 인재 등용 방식이었다. 영조는 각 당파별 색깔을 조합한 탕평채(菜) 요리까지 제시하며 당쟁의 폐해를 막고자 했으나 그다지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만 실제로 실현하기가 어렵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극한 분열과 갈등의 고리를 화해와 대 탕평책으로 끊겠다”고 선언했다. 지역과 성(性), 그리고 세대 구분없이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겠다는 것이다. 당선자와 가깝다고 등용하고, 멀다고 등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한 인사 원칙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대통령이 탕평 인사를 명시적으로 강조하지는 않았으나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겠다는 인사 원칙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이 원칙은 잘 실현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른 인재 등용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또 어떤 조건 하에서 탕평 인사는 바람직할까?

인사에서는 우선 정보 부족의 문제가 따른다. 권력의 가장 정점에 있는 사람이 직접 모든 사람에 대한 정보를 가지기는 어렵다. 당연히 핵심 측근들이 추천하는 인사 중에서 기용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 역시 피추천인의 범위와 각 개인에 대해 제한된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예전과는 달리 정보 유통 수단의 발달로 그 흐름과 소통이 더 원활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보 제한이라는 근원적 한계는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대통령의 탕평 의지가 아주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 의지에 미치지 못하는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정보의 제한성을 상당한 정도 극복하고 대통령의 국정 이념과 철학을 함께하는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문자 그대로의 탕평 인사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자칫 이념, 지역, 성별, 세대 간 안배라는 외형적 탕평 인사가 된다면 의도하지 않게 국정 자체가 난맥상에 빠질 수도 있다.

대통령이 모든 국사를 일일이 챙길 수 없는 마당에 상당한 권한과 책임이 장관이나 공공기관의 장에게 위임되기 마련인데 이들 간의 이념과 철학의 충돌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제3의 길이 가능한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제3의 길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만을 살린 적절한 조합으로 각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두 체제의 이념, 가치, 방법론 등이 서로 충돌하면서 작동하지 않고 결국 한 체제로 수렴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본주의 운행 원리가 강조되면 자본주의 체제로, 정부 개입이 강조되면 사회주의 체제로 수렴한다. 그런 점에서 제3의 길은 없다. 외형에 치우친 탕평 인사도 그런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논공행상과 최고 권력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은 피하기 어렵다. 취임 당시 대 탕평 인사를 바탕으로 정권이 출범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사는 결국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다. 이는 물론 최고 권력자의 용인술에 크게 의존하는 사항이지만, 정권 내내 시종일관 탕평 인사라는 원칙 고수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탕평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차라리 잘 아는 사람들 중에서 이념과 가치 체계 등 사상적 기조를 공유하는 인사들을 등용하여 국정을 펴 나가는 것이 더 나은 길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탕평 인사 원칙에 따라 호남 출신 인사들이 상당수 기용될 전망이다. 인수위는 물론 장관이나 공공기관의 장(長) 등도 몇 자리 할애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정치적으로 고립된 호남 지역 차원에서 보면 상당한 위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호남 인사가 대거 기용되리라는 기대도 크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 상할 일도 아니다. 그보다는 호남인들이 호남지역은 물론 나라 전체를 위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 경제적·정치적 소외를 탈피하기 위해 새롭게 고려할만한 전략적 사고는 없는 것인지를 폭넓고 깊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2013년 새해 계사년을 맞이하는 호남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전남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