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매서운 추위다. 계절이 그래서인지 시절 또한 가슴 시리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추운 시절은 있고, 그 시절이 되어서야 삶과 사람을 배우게 된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는 이렇게 ‘추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세한도’는 제목과 달리, 실은 진정으로 온기 따스한 그림이다.

당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추사는 약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어 적거생활을 했다. 한때 추사 문전에 북적대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제자 우선 이상적(1804∼1865)만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스승을 찾는다. 제자는 중국을 열 두 번이나 다녀오면서 수 백 권의 책을 구해 유배당한 스승에게 보낸다. 추사는 그 마음에 감격하여 제자를 위해 ‘세한도’를 그린다. 겨울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풍경에 허름한 집 한 채와 나무 네그루가 서있고, 그림 왼편에는 그림을 그리게 된 연유를 적었다. 추사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논어’를 인용하면서 변하지 않은 제자의 정에 고마워한다.

‘세한도’를 일러 천하를 유랑한 그림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그려져 이상적에게, 그 후 일제강점기 추사의 연구자였던 경성대 교수 후지즈카 린의 손에 넘어간다. 이를 안 진도 출신의 서화가 소전 손재형선생이 도쿄로 찾아가 백일 동안 설득한 끝에 양도받아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니 그야말로 한권의 소설 이상으로 극적이다.

나의 제주도 여행길에도 추사 적거지가 중요한 행선지다. 초가집과 소나무의 스산한 모습이 ‘세한도’ 그림 속 풍경처럼 낯익다. 이곳에서 추사는 ‘추사체’를 완성했고 ‘세한도’를 남겼다. 절체절명의 고독 속에서 지냈을 추사의 심경이 되어 본다. 내 곁에 있는 가까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새삼 추사와 우선의 깊은 교감이 세상 무엇보다 부러워진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