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범죄는 피해 당사자나 집단에 의한 사적(私的) 처벌이 아닌 국가가 집행하는 공법(公法)에 의한다. 그런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종종 피해자들이 공감할만한 수준보다 낮게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물론 피해 당사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그런 처벌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심중을 나타내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른바 국민의 ‘법감정’에 어긋난다는 말은 바로 이런 점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강풀의 웹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아픔과 사적 복수 감정을 그렸다. 가해자의 정점에 있었던 ‘그 사람’을 단죄하려는 일련의 진행이 영화의 줄거리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가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처벌 강도가 온당하지 않다는 데 대한 피해자들과 일반 대중의 판단과 정서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영화를 통해 광주·전남 사람들이 안고 살아가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실상과 복수 감정을 나타낸 것이다.

5·18은 광주·전남 사람들이 신군부가 자행한 폭력에 맞서 싸워 이 땅에 민주화의 탑을 높이 쌓아 올린 의거다. 5·18 이후 한국의 민주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실질적인 민주국가로 탄생하는 초석이 되었다. 부산과 마산 등 타지역의 민주화운동도 종국적으로는 5·18로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그 상처는 아직도 깊게 패인 채 아물지 않았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온당하지 못하다는 판단과 정서가 상처의 치유를 더디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5·18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일단락된 지금 이를 다시 사건화하여 더 강도 높게 처벌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측면을 고려했다고 여겨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5·18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광주·전남도 과거의 시간에 잡혀있을 수만은 없고, 미래를 향해 새롭게 도약해야 한다. 광주·전남은 물론 호남 전체가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길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이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식의 틀에서 놓여나야 한다. 광주·전남의 시간이 1980년대에 잡혀 있고, 감정의 응어리를 해소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광주·전남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가해자들을 한 차원 더 높게 응징하고, 5·18 정신을 길이 간직하는 길은 5·18을 세계사적인 시민혁명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1980년 5월 광주·전남 사람들이 외쳤던 목소리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것이 인류의 가장 고귀한 가치인 ‘자유’라고 믿는다. 그래서 5·18을 자유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 시민혁명으로 우뚝 세워야 한다.

물론 지금도 그런 작업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는 살아남은 자들과 그 후손들이 꼭 완결해야 할 일이다. 우선 5·18을 광주·전남 사람들만 가치를 부여하는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두가 그 가치를 크게 인식하는 전국적인 운동으로 격상시키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모든 민주화 운동을 총망라하여 이를 개인의 ‘자유’를 위한 일련의 진행으로 개념화하고, 5·18을 그 정점에 올려놓는 작업이 이뤄진다면 이 지역만의 민주화운동이 아닌 전 국가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 프랑스혁명 등과 같은 시민혁명으로 승화시킨다면 그 정신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 분명하다.

〈전남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