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반 고흐 인 파리展’을 관람하러 서울엘 다녀왔다. 서울전에서는 고흐(1853∼1891)의 자화상 9점을 비롯해 파리시절의 빛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흔히 자의식이 강하거나 모델료가 없어 모델을 쓸 수 없었던 화가들이 자화상을 많이 그린다고 한다. 가난한 화가였던 고흐도 그랬을 것이다. 고흐는 31점을 남겼던 자화상 못지않게 여러 점의 구두 그림을 그렸다.

작품 ‘끈이 달린 구두’(1886년)는 밀레에게 영향을 받은 고흐가 역시 밀레의 신발 데생에서 자극을 받은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격렬한 필치, 배경의 밝은 빛과 어두운 신발의 강한 대비가 화가의 극적인 감수성을 보여준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유명한 담론인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예술가는 작품의 근원이며, 작품은 예술가의 근원”이라 전제한 뒤 그러한 ‘예술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고흐의 이 작품을 예로 든다.

하이데거는 너무 오래 신어서 너덜해진 구두에서 밭일을 나선 농촌 아낙네의 고단한 노동을 떠올린다. 구두는 발을 감싸는 도구를 넘어 ‘밭고랑 사이를 걸어가는 강인함’과 ‘대지의 말없는 부름’ ‘잘 익은 곡식을 선사해주는 대지의 베풀음’ 등 대지에서 꾸려지는 농민의 삶을 발견하게 한다.

후일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1904∼1996)는 고흐 작품의 ‘구두’는 제작연대로 보아 당시 파리에 살던 ‘고흐의 신발’일거라는 편지를 하이데거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림 속 구두는 농촌 아낙네의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고흐의 ‘다른 자아’의 모습, 고흐의 자의식을 표현한 또 하나의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그림 속 늘어지고 낡은 구두에서 고흐의 외롭고 고단했던 삶의 표정을 읽는다. 고흐는 이 구두를 그리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위로했을 것이다. 오늘 고흐의 ‘구두’앞에 선 나 역시 내 삶의 무게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235mm 크기의 내 구두를 보면서 안쓰러움과 친밀함에 가슴 한 켠이 저려온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