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과 무소속 후보자들이 출사표를 던지고 집권 시 실천할 공약을 내놓으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 운동에 돌입했다.

이런 후보자들에게 사람들은 흔히 국가 경영의 철학을 묻는다. 그러나 질문이 잘못됐다. 가치관, 습관, 인생관, 선호 등이 서로 다른 수많은 이질적(異質的)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거대 사회는 구체적 목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목적은 추상적이지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국가는 경영의 대상이 아니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이나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말은 이런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 다중의 의사를 묻는 선거 방식에 의해 국사를 담당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물론 가장 적합한 사람이 선출되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민주적’ 의사결정에 의한 선출은 다중이 그렇게 원한다는 것일 뿐, 선출 방식 자체가 체계적으로 최적의 인물을 뽑는다는 보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가 수상이 되고 미국을 중흥시킨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이 낳은 체계적 결과가 아니라, 단지 행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제도가 선호되는 이유는 아직 인류가 더 나은 다른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구체적 목적을 가진 학교, 기업, 병원 등의 조직은 경영의 대상이다. 학교는 교육과 연구가 목적이며 기업은 돈 버는 것이 목적이다. 또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조직은 당연히 그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동질적(同質的)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조직의 목적을 공유하지 않거나 공유할 능력이 없으면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국가에는 구성원을 퇴출시키는 장치가 없지만 조직에는 퇴출 장치가 있는 이유다. 그런 만큼 조직의 운영은 명령과 통제에 따른다. 그런 조직의 장(長)을 구성원들의 민주적 의사 결정 방식에 의해 선출하는 것은 조직의 구성 원리에 맞지 않는다.

한 동안 대학가를 술렁이게 한 교직원들에 의한 총장 직선 추천제가 완전히 폐지될 전망이다. 총장 직선 추천제는 1980년 대 후반 학원 민주화의 기치 아래 도입되었고, 이는 군사정권에 의해 학원이 탄압받던 당시에는 정당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선거 비용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여론의 지원 등 아군(我軍)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부에 의한 학원 탄압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추천을 위한 직선 방식으로 적합한 인물을 선택한다는 보장이 없는 마당에 선거 비용만 많이 들어간다는 점도 큰 문제다.

효율성은 산출물의 가치를 투입물의 가치로 나눈 것이다. 선거에 의한 산출물 가치가 체계적으로 높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투입물 가치를 낮추는 것은 총장 선임과 관련된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총장 직선제를 유지하려는 배경에는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명분이 있다. 물론 교육과 학문의 자유를 위해서 학원의 자율성은 보장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재정 자립 없는 자율은 소망 사항일 뿐이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의 국립대학이 처한 상황이다.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는 법인화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경쟁력을 높이고 평판을 높여 자생할 수 있는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직원들은 법인화에 반대한다. 퇴출의 위험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자율과 생존 간의 갈등에 따른 모순이다. 현 상태대로의 생존을 원한다면 자율은 일정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국가로부터 자원을 지원받으면서 소망하는 자율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요컨대, 수많은 익명의 이질적 사람들이 살아가는 국가 사회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데 선거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구성원들을 동질화해야만 구체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학교 같은 조직에서 선거는 애초에 맞지 않는 방식이다. 교직원 직선에 의한 총장 추천제를 폐지하는 것은 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진전이다.

〈전남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