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하통일의 초석을 놓은 전국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 그는 다도를 일본에 뿌리내리게 한 센노리큐를 만나면서 차문화에 심취하게 된다. 주군인 노부나가가 다도에 푹 빠져있다는 소문은 금새 그의 가신들에게 퍼져 나갔고, 그들도 앞다투어 차문화를 익히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자신의 봉록을 주군이 소장하고 있는 멋진 다기로 대신해 줄 것을 청하는 가신들까지 생겨났다.

노부나가는 공을 세운 가신들에게 토지를 분배해 줘야하는 당시의 포상제도 때문에 골치가 아픈 참이었다. 토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공을 세운 가신들은 늘어 갔기 때문이다. 이른바 토지가 물적 가치의 가장 중요한 척도였던 시대에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물적 가치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차문화의 확산은 예기치 않은 많은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다기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니 곳곳에 다기를 굽는 공방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었으며 이를 통해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러나 차문화는 도자기를 하나의 새로운 산업으로서 정착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차를 즐기는 데 어울리는 복장에 관심이 모아 지면서 옷감의 질이나 색상을 생각하게 되고, 차를 즐기는 동호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차 모임을 가지려고 하니 예전에는 관심 밖이었던 집안의 장식품에서부터 정원의 양식 하나하나까지 신경이 쓰이게 된다.

의복에 신경을 쓰니 직조술과 염색술이 발달하고,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돌에도 의미가 부여되니 석조산업이 꽃을 피우고, 꽃을 가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화훼산업이 자리를 잡고, 다도회에서 폼나게 시 한 수라도 읊으려고 시집을 찾으니 출판산업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노부나가와 센노리큐의 다도를 통한 만남이 일본 역사를 통해 가장 문화가 성숙한 시기로 평가받는 아즈치(安土)문화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 아즈치시대가 외부와의 교역에 의존하지 않고 내수만으로도 꾀나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물론 노부나가가 다도의 산업적 측면까지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센노리큐와 노부나가가 주도했던 차문화는 요즘 우리들 시각으로 보면 비생산적인 일이다. 심하게 말하면, 차나 마시며 노닥거리는 쓸데없는 짓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차문화는 결과적으로 한 시대의 생산과 소비와 생활양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문화가 산업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적 기반을 어떻게 키워 내느냐에 있다. 답은 상상력과 자유로움에 있다.

어느 기업인이 실리콘벨리와 더불어 밴처기업의 메카라 불리는 이스라엘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현지의 한국인에게, 이스라엘이 벤처기업에서 성공하는 가장 큰 요인이 뭐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버릇이 없다 싶을 정도로 애들을 자유롭게 놓아두는 교육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 건축가 반열에 오른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 그의 독특한 건축세계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제도권 건축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젊은 시절 독학으로 건축의 기본을 터득한 후 세계의 온갖 건축물을 발로 찾아 다니며 키워 온 건축적 상상력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상상력과 자유인의 상징이다.

지금 우리 교육에 가장 절실한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질없는, 소위 쓸데없는 짓을 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부모들 눈에는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상상력의 원동력이다. 상상력은 자유로움과 쓸데없는 짓을 먹고 자란다.

시험을 앞둔 자녀가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소설로 밤을 지샐 때, 이를 묵묵히 지켜볼 수 있는 부모가 대한민국 상상력 향상의 최고의 후원자임을 기억하자.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될 금기어.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공부나 해!”

〈김규열 광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