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학을 세계적인 일류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2001년에 설립한 위안페이(元培)학원이 큰 성과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초학문을 폭 넓게 배우고, 글쓰기와 비판적 사고능력을 강조하는 자유전공제도를 주축으로 한 교육혁신이 궤도에 올라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1949년 공산당집권 이후 중국의 대학은 소련 방식을 따라 관료양성과 전문기술교육에 치중해왔고, 이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양성과는 동떨어진 구시대적 교육방식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1998년 베이징대 개교 100주년 때 장쩌민(江澤民·강택민) 당시 국가 주석은 ‘세계 일류대학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교수들은 2년간의 연구와 토론을 거쳐 중국 최초로 자유전공학부 제도를 도입한 단과대학을 만들 것을 결정했다.

일류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신설된 학원 이름은 20세기 초 베이징대 총장(당시에는 교장으로 칭함)을 지낸 차이위안페이(蔡元培·채원배) 선생의 이름에서 따왔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사실은 그렇게도 중요한 대학의 이름을 생의 말기에 중국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폭력적 혁명에는 찬동하지 않았던 인물에서 따왔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당국이 대학의 아카데미즘의 회복과 학문의 자율과 자유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차이위안페이는 단순한 사회주의적 지식인이 아니라 진보적, 자유주의적 입장, 무정부주의적 취향, 평민주의적 지향, 정치적으로는 반공과 반독재민권운동 등의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베이징대의 총장으로 재직할 때 “사상의 자유와 무엇이든 포용한다”는 원칙으로 대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이러한 단면을 보여준 일화로는 나중에 초대 공산당 총서기가 된 천두슈(陳獨秀·진독수)에 관한 이야기가 좋은 보기이다. 당시 베이징대 문학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마르크스 사상을 심어주던 천두슈가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고 다닌다하여 동료교수들이 총장에게 그의 해임을 건의하자, 차이위안페이는 “교수의 평가는 술집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강단에서 이루어져야한다”며 요구를 일축했다.

학자와 교육자로서 차이위안페이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크게 돋보이는 것은 그가 유럽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1916년 초대 베이징대학 교장이 되자 다양한 사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공정하게 두루 채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학문과 혁명노선을 추구하는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양수명(梁漱溟)같이 학력도 없고, 전통한학을 공부한 인사도 교수로 초빙하였다. 양수명은 그가 1924년 북경대학을 사임할 때까지 청년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유학강좌를 꾸려나가 그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오늘날에는 그가 19세기말 이래 서양근대의 학문에 압도되었던 유교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함으로서 유교를 지키고자 했던 ‘현대 신유학’의 아버지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인물이다.

만일 1910년대의 시대적 유행과 조류에 휘말려 차이위안페이가 양수명을 베이징대 교수로 초빙하지 않았다면 ‘현대 신유학’은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와 독일에서 공부한 차이위안페이가 일본 유학을 한 천두슈를 껴안고, 전통한학자 양수명의 진가를 인정하는 등 인재를 널리 구해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을 구가하며 시대를 앞서 이끌어갔다는 사실이 새롭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차이위안페이는 무술정변의 실패 원인을 인재양성의 부족에서 찾을 정도로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혜안을 갖고 있었으며, "구국의 근본적인 길은 학술에 그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선각자였다.

때마침 지역의 대학들이 새로운 총장을 뽑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부디 대학의 선거가 아카데미즘의 회복을 위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초학문 교육을 강화하고, 다양성과 포용의 정신이 존중되며, 아카데미즘의 회복을 대학에 가져올 총장이 우리지역의 대학들을 이끌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최 협 전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