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도시의 거리를 거닐면 지난 밤새 잠들어 있던 정신을 깨우는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출근을 하기 위해 짙은 녹음으로 변해가는 은행나무가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김밥 만드는 아줌마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면 구두 고치는 아저씨가 길거리에 간이역처럼 만든 가게문 여는 소리가 화음에 맞춰 들려온다. 세탁소 아저씨도 미용실 아가씨도 부산을 떨고 거리에서 과일 파는 얼굴이 검게 탄 아줌마도 거의 하루를 거르지 않고 그 모습으로 서 있다.

이른 아침 삶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서민들의 삶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몇몇 동창들을 만났었다. 이제 50대 중후반에 들어선 친구들의 모습에서는 어릴 적 고교시절의 청춘의 모습은 간데없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반백의 머리에 짙은 주름들이 서로의 모습에서 인생의 애환을 보는 것 같았다.

씁쓸한 소주 한 잔의 정담은 숨막히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꿈을 버리지 않고 움켜쥐고 가려는 중년의 자화상이었다.

이런 우리들을 요즘은 베이비부머라고 말한다 베이비부머는 베이비 붐세대를 말하는 미국 용어로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종전 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정책 도입 직전인 1963년까지 9년에 걸쳐 태어난 713만 명을 일컫는다. 전쟁 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기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숨가쁘게 돌아가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격변기 속에서 경쟁과 가난의 고통을 통과하며 경제성장을 일구어낸 주역들이다.

유신과 군사독재, 가파른 경제성장과 IMF충격 등 수많은 역사적 현장 속에서 우리나라 산업을 일구어낸, 드라마로 말하면 치열한 삶을 살았던 스토리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이러한 베이비부머들의 모습이 이제는 밝지만 않은 것 같다. 조기은퇴를 강요받는 고통 속에서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녀로부터 봉양을 받을 수 없는 처음 세대가 될 것이라는 자조적인 말들은 수많은 현장을 헤쳐나온 격변기 속의 드라마 주인공들을 아프게 한다.

베이비부머들의 평균 자녀 수는 2명 정도이고 93.1%가 결혼하지 않는 미혼자녀에다 앞으로 몇 년간은 대학졸업과 자녀결혼 등 가정경제의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다. 또한 베이비부머들의 부모들은 79.8%가 자신이나 배우자 부모 중 한 분이 생존해 있어 자녀와 부모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끼인 세대’ 즉 샌드위치 모양의 압박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요즘 베이비부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자녀들의 대학교육비와 취업문제이다.

대학등록금은 자율화에 맡긴 시기부터 해마다 상승하여 2000년 초 사립학교에서 400만 원 가량했던 등록금이 지금은 600∼700만 원 정도 상승했다. 대학을 두 명 정도 보내는 가정에서는 자녀의 용돈까지 합하면 대다수의 서민들은 노후준비는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졸업한 이후에도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자녀가 부지기수여서 졸업한 이후에도 경제적 지원을 계속해야하니 답답한 일이다. 조기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의 재취업문제도 자녀의 취업과 겹치게 되어 자녀와 취업경쟁을 해야 할 판이니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야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이런 시점에서 일어난 반값등록금 문제는 정부나 정치권 대학 등이 서민의 심정으로 머리를 맞대 합리적 해결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학자금 융자를 얻은 젊은이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사회생활의 초반부터 빚더미에 앉은 것은 희망을 잃은 고통의 모습이다.

이른 아침 자신의 삶의 터전을 향하여 분주히 걷는 수많은 서민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볼 줄 아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 생각한다. 백성의 행복만을 통치의 목적으로 삼았던, 철인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정신이 그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격변기의 역사 속에서 산업을 일궈낸 베이비부머들의 드라마가 이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기대해 본다. 베이비부머들이여, 우리의 친구들이여 서리 내린 반백이 바람에 흩날리던 날에도 우리 손 맞잡고 걸어가자. 아빠의 청춘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한희원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