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름 뉴욕 한복판에서 접한 영화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스팅’(The Sting·1973년 작)이다. 1936년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치밀한 계획을 통해 갱단 두목을 속이는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주연배우의 명연기와 경쾌한 피아노 OST, 그리고 허를 찌르는 마지막 반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주 오래된, 그것도 누구나 다 아는 영화를 가지고 감동 운운하는 건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어서다. ‘스팅’을 만난 곳은 뉴욕의 영화관이 아닌 공원이었다. 맨해튼 42번가에 자리한 브라이언트 파크 필름 페스티벌에서였다. 맨해튼의 미드타운에 위치한 입지조건을 살려 매년 6∼8월(매주 월요일 밤 8∼10시) 추억의 영화들을 상영하는 도심축제다. 이날 뉴요커들은 간단한 먹을거리와 담요를 챙겨 행사 시작 2∼3시간 전부터 삼삼오오 공원 잔디 위에 모여 앉았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되자 시원한 밤 공기를 마시며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올드무비를 즐겼다. 그 어떤 화려한 영화관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기간 매주 목요일엔 ‘브로드웨이 인 브라이언트 파크 페스티벌’이 뉴요커들을 공원으로 불러 모은다. 한 해 브로드웨이에서 각광받은 뮤지컬들을 옴니버스로 공연하는 갈라축제다. 티켓가격이 100달러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부담스러운 음악팬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공짜구경은 없다.

9월에 접어들면 브라이언트 섬머 페스티벌의 바통은 브루클린 필 하모니와 관현악단 ‘바지뮤직(Barge music)’ 가 건네 받는다. 이름하여 ‘브라이언트 가을 페스티벌’.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추위가 찾아오는 탓에 10월 초까지만 공원을 개방해 뉴욕시민들을 클래식 세계로 이끈다.

브라이언트 파크가 처음부터 뉴욕의 문화명소는 아니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마약 거래상들과 노숙자들의 소굴로 악명이 높았다. 지난 1990년대 초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맨해튼의 ‘레드존’(red zone)를 오아시스로 바꾸는 대대적인 공원정비에 나섰다. 가장 먼저 1992년 아담한 규모의 공원을 깔끔하면서도 우아한 프렌치 스타일로 단장했다. 여기에 매년 4월∼10월까지 패션쇼, 음악회, 영화시사회, 전시회, 독서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이어지도록 하는 상설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 브라이언트 파크는 뉴요커들의 일상과 뗄 수 없는 친근한 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뉴욕에 브라이언트 파크가 있다면 광주에는 ‘금남공원’ (광주시 동구 금남로 3가)이 있다. 하지만, 그 위상은 딴판이다. 지난 2003년 한국은행 광주·전남지역본부가 상무지구로 이전하면서 시민들의 품으로 되돌아왔지만 이럴 다할 볼거리가 없어 인근 직장인들이나 시민들이 자투리 시간을 때우는 장소로 머물러 있다. 금남공원의 산뜻한 경관과 시설만으로는 시민들을 불러모을 수 없다.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언제든지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문화쉼터로 가꿔야 한다. 신록의 계절 5월, 철쭉구경이 전부인 금남공원을 보니 뉴욕의 브라이언트파크가 새삼 그립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