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년∼1911)는 지휘자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가 지휘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는 유럽 전역에서 매번 매진을 기록했다. 포디엄(지휘대)에서 만큼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었지만 작곡가로서의 시작은 그다지 산뜻하지 못했다. 1889년 초연된 교향곡 1번 ‘거인’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생전 말러는 총 9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여느 작곡가들이 불규칙적으로 작곡을 한 것과 달리 말러는 모범생 처럼 1∼2년에 걸쳐 교향곡을 하나씩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작곡패턴에서 벗어난 작품이 있었다. 교향곡 2번 ‘부활’(1888∼1894)이다. 다른 교향곡들이 1∼2년에 완성된 것과 달리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작곡을 시작하자 마자 그의 부모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등 악재가 겹쳤던 탓이다.

교향곡 2번 ‘부활’ 작곡 기간이던 1891년 함부르크에서 만난 당대 최고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뷜로는 말러를 눈여겨보고 그를 초청해 작곡한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뷜로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듣다가 두손으로 귀를 막았다. 감상 소감을 묻는 말러에게 “만일 그런 걸 음악이라고 한다면, 나는 음악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 같네”라는 독설을 던졌다.

뷜로와의 만남은 말러에게 치유하기 힘든 좌절을 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향곡 ‘부활’은 뷜로 덕분에 세상에 나왔다. 마지막 악장을 남겨두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전하던 말러는 1894년 뷜로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됐다. 장례식장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클롭슈톡의 ‘부활’을 듣는 순간 머리가 쭈볏서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클롭슈톡의 시를 교향곡의 가사에 차용해 합창 등이 한 데 어우러지는 대 서사시 ‘부활’ 교향곡을 완성하게 됐다.

세기말의 고독, 인생무상을 솔직하게 드러낸 ‘부활’은 21세기 클래식 연주회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됐다. 최근 국내에서도 말러의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탄생 150주년인 올해는 광주시향을 비롯해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 부산, 부천,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말러 음악회가 예고돼 있다.

하지만 광주시향이 5·18 항쟁 30주년을 기념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부활’ 서울연주회(5·18일 예정)가 무산돼 아쉬움을 주고 있다. 예술의 전당 대관 심의과정에서 탈락한 뒤 마땅한 공연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성 등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심사했다는 예술의 전당 측의 설명에도 아쉬움과 실망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5월 전국화’는 여전히 광주의 희망사항 뿐인가 보다. “5·18은 광주의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다. ‘부활’ 5악장의 합창 부분 가사는 80년 ‘그날’을 떠올리게 한다”는 구자범 광주시향 상임지휘자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을 파고든다.

“…우리 살리려, 너 피흘려/ 오 그대, 너 뜻없이 산 것 아니라…/ 빛을 따른자, 다 죽었으나/모두 다시 살아나리/…살기 위해 죽으리라…/자 일어나, 내 사랑아, 너 일어나…"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