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환, 김동하, 하영술, 이강하, 서정봉….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최근 수년 사이에 우리 곁을 떠난 화가들이라는 점이다. 이씨처럼 오랜 투병끝에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지만 나머지 작가들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안타까움을 주었다. 30∼50대인 이들은 저마다 개성적인 작업으로 광주미술계의 기대를 모았었다. 왕성한 창작열로 장차 광주화단을 이끌어 갈 주인공들이었다는 점에서 지역 미술인들의 슬픔은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들을 안타깝게 하는 건 이들의 죽음이 가난과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화가’라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각박한 현실과 맞서왔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한 젊은 작가는 수입이 거의 없어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궁핍한 생활은 부인과의 별거로 이어졌고 홀로 작업실에서 외롭게 작업하던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도 미룬 채 창작에 전념했던 40대 김동하씨도 녹록치 않는 현실과 싸우다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다.

지역의 많은 작가들은 ‘예술가’라는 화려한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상당수 가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월 평균 수입이 100만원 이하다. 미술품 경매에서 한점에 수억원에 거래되는 블루칩 작가는 ‘먼 나라 이야기’다. “작품을 판매한 적이 없어 내 그림가격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한 작가의 넋두리는 이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0살이 넘어서도 ‘화려한 싱글’을 고수하는 작가들이 많다. 게다가 일부 젊은 작가는 본업인 화가 이외에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공사장을 전전하기도 한다.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정병국(한나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예술인의 28.7%는 월 평균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의원의 ‘예술인 인식 및 복지수요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예술인의 4대보험 가입실적은 건강보험의 경우 98.2%였지만 국민연금은 52.0%, 산재보험 33.8%, 고용보험 33.3%에 머물렀다. 예술인이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실제로는 대부분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주를 방문해 연극 ‘무어별(無語別)’관람했다. 문광부장관의 연극 관람이 뉴스거리는 아니지만, 이번 유 장관의 나주행이 화제를 모은 것은 한 연극인의 편지 때문이다. ‘무어별’을 무대에 올린 나주전문예술극단 ‘예인방’ 대표 김진호씨가 문광부 홈페이지에 ‘지역 연극계의 어려운 사정과 애환을 가까이서 보고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간곡한 글을 올린 것이다. 공연 뒤 유 장관은 “지역 연극인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연극인들이 좋은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여건조성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삶과 예술의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르는’ 예술인들의 현실은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예술을 공적 영역으로 인정해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대책을 수립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이번 유 장관의 나주방문이 단순한 이벤트로 끝나지 말아야 할 이유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