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여행중인 관광객들은 수많은 볼거리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중에서도 미술관과 뮤지컬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할 명작’들이 가득하다. 하루 종일 미술관을 둘러봐도 전시작품의 절반도 못보고 나오기 일쑤다.

게다가 뉴욕의 밤은 관광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다. 여행으로 인한 피곤함도 잊은 채 밤이 어두워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브로드웨이로 향한다. 밤 8시부터 40여개의 극장에서 일제히 시작하는 뮤지컬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오페라의 유령’, ‘렌트’, ‘미녀와 야수’, ‘시카고’ 등 이른바 ‘스테디 뮤지컬’이 공연되는 극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뉴욕의 밤은 또 다른 관광의 시작이다.

일정에 조금 여유가 있는 관광객들은 뉴욕 인근의 가볼 만한 곳들을 찾기도 한다.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급부상한 곳이 있다. 맨하튼에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변두리 미술관, 디아비컨(Dia Beacon)이다. 그러나 미술관의 첫 인상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화려한 랜드마크를 자랑하는 맨하튼의 미술관들과는 사뭇 다르다.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해서인지 외관은 허름한 물류창고에 가깝다.

하지만 이 같은 실망은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경이로움으로 바뀐다. 앤디 워홀, 리차드 세라, 댄 플래빈, 솔 르위트 등 20세기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의 ‘분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맨하튼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매년 전 세계에서 50여만 명이 다녀간다. 인구 15만 명의 비컨을 신생 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기적의 미술관이다.

뉴욕이나 비컨에서 보듯 문화도시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랜드마크나 콘텐츠 등 차별화된 볼거리 말이다. 그중에서도 콘텐츠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흥행카드다.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를 놓고 근 1년 3개월간 중단됐던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사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최근 정부가 별관 일부를 존치키로 결정함에 따라 오랫동안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문화전당(전당)의 콘텐츠가 발등의 불이 된 것이다. 사실 ‘별관’에 매달린 지난 1년은 콘텐츠를 구상하는 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더욱이 광주는 랜드마크 논란으로 이미 금쪽같은 시간을 흘려 보낸 과거가 있지 않은가.

이제는 전당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현 문화전당 계획안에 따르면 민주평화 교류원, 아시아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어린이 지식문화원 등 주로 연구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연구와 교육만 있을 뿐 향유와 관광시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전당과 광주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낮과 밤을 즐겨야 하는 데 그럴 만한 볼거리가 부족하다. 문광부의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3만5천여 평의 전당은 관광객 대신 직원들로 넘쳐나는 썰렁한 연구실이 될 게 뻔하다.

문화경쟁의 시대, 콘텐츠도 없고 수익도 못 내는 문화시설은 퇴출 0순위다. 세상에 하나 뿐인 전당의 아이콘 개발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박진현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