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블루닷 아시아 2009’전을 다녀온 서양화가 K씨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자리에 지역작가들이 ‘주연’으로 참여해 광주미술의 우수성을 과시한 것이다.

‘블루닷 아시아’는 아트페어와 비엔날레를 결합했다는 점에서 개막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판매만을 위해 작품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지 않고 주제에 따라 작품을 배치한 독특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K씨가 놀란 건 전시회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비엔날레의 예술성과 아트페어의 상업성을 접목한 아이디어가 신선했지만, 정작 그를 사로잡은 것은 참여작가들의 면면이었다. 김용안, 박수만, 이정록, 정운학, 양문기, 윤남웅, 신호윤, 황지영 등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선후배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술관 전관을 돌아보면서 K씨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서울, 부산 등 타 지역 작가들에 비해 뛰어난 작품성 때문이었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광주작가들의 작품이 두드러 졌던 것이다.

요즘 대규모 현대미술 기획전을 가 본 미술애호가라면 K씨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현대미술’ 하면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작가나 국제무대로 진출하는 갤러리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의 독무대였다. 때문에 국내화단을 쥐락펴락하는 큐레이터들은 한동안 국제 아트페어나 비엔날레에 서울 작가들을 앞세우고 다녔다. 이불, 서도호, 조덕현, 함진, 양혜규, 최정화 등이 단골멤버들이다.

하지만 근래 이들의 자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광주비엔날레 키드’(Biennale Kid)들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와 더불어 ‘성장한’ 지역작가들이 국내외 무대에서 ‘미술의 도시’ 광주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국제미술의 흐름을 접한 이들은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가운데 손봉채, 이이남, 강운은 뉴욕 아트페어, 프라하 비엔날레, 세비아 비엔날레 등을 통해 국제 무대에 얼굴을 알렸다. 불과 몇 년전 까지만 해도 ‘광주작가’로서는 좀처럼 ‘선택받기 힘든’ 참여작가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사실 그동안 광주비엔날레를 둘러싼 논쟁 가운데 하나가 지역작가 육성이었다. 7회째 대회를 치른 비엔날레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광주작가들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매번 1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정작 ‘지역’에 남는게 없다는 비난은 광주비엔날레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하지만 최근 광주비엔날레 키드들의 활약상을 보면 비엔날레가 ‘밑빠진 독’에 물을 부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비엔날레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작가들이야 말로 부인할 수 없는 비엔날레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비엔날레 키드들이 국제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어덜트(adult)’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