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정명훈씨는 오는 20일 지휘대에 서는 대신 피아노 앞에 앉는다. 국립 중앙박물관(이하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음악회에서다. 물론 아예 지휘봉을 놓는 건 아니지만 이날 음악회에서 정씨는 많은 시간을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 관객들과 만난다.
이날 정씨가 연주자로 ‘깜짝 외도’를 하게 된 것은 음악회를 주최한 유창종(63) 국립중앙박물관회장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회(이하 박물관회)는 ‘박물관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유물기증, 학술연구지원, 후원기금 마련 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정씨와의 인연은 지난 90년 당시 검사였던 유 회장이 유엔 마약 퇴치 친선대사로 정트리오를 천거하면서 시작됐다. 현역 검사시절 마약수사의 대부로 불렸던 그는 고미술에 관심이 많은, 국립박물관의 ‘단골’이었다.
하지만 정씨가 유 회장의 러브콜을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20년 가까이 교감을 나눈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립박물관 서포터즈를 자처한 유 회장의 열정에 마음이 움직였다.
유 회장의 ‘박물관 사랑’은 각별하다. 지난 2005년 박물관회장에 취임하자 마자 국립박물관의 실질적인 후원기관이 되기 위해 60대 이상 임원진을 50대의 ‘젊은피’(?)로 긴급수혈했다. 최근엔 ‘영 프렌즈’라는 이름으로 젊은 박물관 후원그룹을 양성하고 있다. 또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자는 취지에서 ‘천마회원’(기부금 1천만원 이상을 낸 회원)이란 제도를 운영, 현재 10억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물관회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학술상’ 덕분이다. 국립박물관의 저력은 학예사들의 연구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그는 대학에 우수 인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학술상 상금 총액을 2천400만원으로 늘렸다. 학예사를 대상으로 한 학술상 상금으론 국내 최고 수준이다. 박물관회는 국립박물관이 대영박물관 못지 않는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하도록 지속적으로 후원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중앙박물관이 박물관회의 후원을 듬뿍 받고 있다면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시향의 뒤에는 ‘광주미술관회’와 ‘광주시향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광사모)이 있다.
지난 2004년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광주시립미술관을 후원하기 위해 발족된 광주미술관회에는 현재 약 500여명이 참여, 유망작가 초대전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창립된 ‘광사모’ 역시 공연티켓 사주기 운동 등 공연인구 저변확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립박물관이 ‘글로벌 박물관’의 장기비전을 갖기까지에는 박물관회의 보살핌이 밑거름이 됐다.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시향이 아시아의 문화아이콘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지역민의 한결같은 ‘응원’이 절대적이다. 서포터즈의 위력은 스포츠 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문화는 사랑을 먹고 크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박진현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