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의 국제 미술계는 너무나 서유럽적이거나 혹은 미국적이었다. 예술이란 세계의 특정지역에만 존재하지 않는, 매우 다양한 것이다. 제11회 카셀 도큐멘타(이하 D11)는 미술의 글로벌리즘을 재현해 낼 것이다 ….”
지난 2002년 6월 8일,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독일 중북부의 소도시 카셀로 쏠렸다. 이날은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전인 카셀 도큐멘타 개막일이었다. 지난 1955년 창설된 카셀 도큐멘타는 독일의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유럽 미술계를 주름잡는 ‘빅3’이다.
하지만, ‘D11’이 세인들의 시선을 끈 진짜 이유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예술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Okui Enwezor·현 2008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쿠이는 도큐멘타 사상 최초의 비유럽 국가 출신 큐레이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셀 도큐멘타는 유럽의 거물급 큐레이터들이 돌아가며 맡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또한, 오쿠이는 카셀 도큐멘터가 50년간 불문율처럼 지켜온 백인 남성 중심주의를 깨뜨린 첫 번째 흑인이었다. 여기에 유럽·미국 미술중심의 도큐멘타 전시장에 처음으로 인도와 아프리카 미술을 끌어들인 점도 화젯거리로 충분했다.
이 같은 오쿠이의 ‘글로벌리즘’은 비서구 미술을 미술이라는 큰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D11’이 거둔 최대의 성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오쿠이 감독의 파격적인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인 로버트 스토(Robert Storr)와의 논쟁은 국제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의 이슈‘였다. 스토 감독은 베니스 비엔날레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미술을 조명하는 ‘아프리카관’을 마련했다. 하지만, 오쿠이는 “77개 국가관을 설치한 베니스 비엔날레가 유독 아프리카만 대륙 전체를 하나의 ‘아프리카관’으로 몰아넣어 차별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아프리카 미술에 그의 열정은 현대미술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를 제시했다며 미술계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오는 2008년 9월, ‘이슈 메이커’ 오쿠이 감독이 또 한번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비엔날레 사상 처음으로 주제가 없는 전시로 펼쳐지는 제7회 광주비엔날레(9월5일∼11월9일)를 통해서다.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는 현대미술을 특정 주제로 묶는 것은 관람객들의 감상을 제한시키는 반 예술적 행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7회 행사는 스타작가도 적고 부대 프로그램도 없는, 말 그대로 ‘3무(無) 비엔날레‘로 치러진다. 특히 올 가을에는 싫든 좋든 ‘아시아의 넘버 1’을 놓고 상하이, 싱가포르, 시드니 비엔날레 등과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 매번 비엔날레의 관행을 깨뜨려 세계 미술계를 사로잡은 오쿠이의 마법이 광주에서도 통할지 자못 궁금하다.

/박진현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