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주요 국공립 미술관은 외국 유명미술관의 분관(?)으로 전락했다. 그 중에서도 서울시립미술관은 가히 독보적이다. 지난 2004년 ‘샤갈전’으로 대박을 터뜨린 이후 특별기획전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수십여 개의 외국작가전을 줄줄이 ‘유치’했다. ‘마티스’ ‘피카소’ ‘마그리트’ ‘모네’ ‘반 고흐 전’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에도 서너 개의 초대형 명화전이 미술관 입성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 예술의 전당도 예외가 아니다. ‘아트페어(미술작품을 팔기 위한 장터) 전문 미술관’이란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굵직한 해외전을 꾸준히 열었다. ‘서양미술 400년 전’을 필두로 ‘대영박물관 한국전’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전’ ‘르네상스-바로크 회화걸작선’ ‘인상파 거장전’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 등 면면도 화려하다. ‘블록버스터전’으로 불린 이들 전시회는 ‘죽기 전에 꼭 한번 봐야 할 그림’이라는 그럴듯한 홍보문구를 앞세워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여기에는 “재임시절 블록버스터전을 개최했다”는 성과를 노린 일부 국공립미술관장들의 한건주의도 한몫하고 있다.
올해는 이 대열에 광주시립미술관도 합류한다. 최근 상업성이 강한 외부기획사의 루벤스 명화전에 오는 7월20∼11월15일까지 약 4개월간 시립미술관의 전시장을 내주기로 한 것이다.
사실 미술애호가 입장에서 보면 이들 블록버스터전은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서울, 대전 등 타도시에 비해 블록 버스터전을 감상할 기회가 적었던 광주 시민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이번 루벤스 전이 미술관 측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마련한 기획 전시라기보다 외부기획사에 의해 급조돼 패키지 차원에서 받아 들여온 것이라 데 있다. 이렇다 보니 전시의 철학과 내용이 빈약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외부기획사에 전시장을 대관하더라도 최소한 공공미술관으로서 전시를 유치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조망하는 제7회 비엔날레 기간(9월5일∼11월9일)에 중세회화의 거장 루벤스전을 개최하는 것은 누가 봐도 생뚱맞기 그지없다.
또한, 외부기획전에 4개월이라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역시 득보다 실이 크다. 특정 블록버스터전에 장기간 전시장을 할애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전시 기회를 갖지 못하는 광주작가에게는 더 깊은 소외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비엔날레는 시립미술관이 중외 공원벨트로 이전해 열리게 되는 만큼 무게감 있는 기획전을 개최함으로써 (비엔날레 관람객들에게) 광주미술을 알릴 수 있는 호기(好機)를 살리지 못하게 됐다.
명분도 약하고 공공성도 떨어지는 루벤스 명화전을 선택한 시립미술관. 임대료 몇 푼에 광주 문화의 자존심을 통째로 내준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