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전업 화가 Y씨는 자신의 호당작품가격을 모른다. 화가가 자기의 그림 값을 모른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이유는 대학 졸업 후 지금껏 그림 한점을 팔아 본 경험이 없어서다. 개인전이라도 열면 가까운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한 두 점 사주었겠지만 왠지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전시회 따위는 포기한 지 오래다. 밥벌이도 못하는 ‘말뿐인’ 직업화가를 때려 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림이 좋아’ 여지껏 캔버스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3년 전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 문을 연 미술학원이 그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학교만 졸업하면 제 앞가림 정도는 할 것으로 기대했던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여간 마음이 착잡한 게 아니다. 그런 Y씨를 요즘 더욱 자괴감에 빠뜨리는 것이 있다. 미술품 경매 열풍이다. ‘자고 일어나면 억(億) 억하는’ 그림 값 때문에 가뜩이나 비참한 처지가 더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찍이 그림으로 먹고 사는 행복을 접은 그이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미술품 가격 앞에서는 의연하기가 쉽지 않다. 비단 Y씨 뿐이겠는가. 대부분의 20∼30대 젊은 작가라면 근래 미술시장의 활황이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다. 미술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광주지역 작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난해 초부터 불기 시작한 미술품 경매 열기는 철저히 서울과 부산에 집중돼 지역작가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게다가 박수근, 이중섭 등 작고작가에서부터 이우환, 천경자, 이대원 등 원로·중진작가 위주로 거래가 이루어져 시장의 온기를 느끼기 어렵다. 신진작가나 청년작가의 경우 일부 화랑의 ‘큰손’들이 ‘띄워주지 않는 한’ 경매시장에 진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미술시장의 단기간 급성장으로 인한 시장 왜곡 현상 때문이다. 최근 경매시장은 일부 인기 작가의 작품만 계속 가격이 오르는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일부 ‘팔리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소위 ‘블루칩’ 작가와 스타작가 20%만이 시장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전남대 문화예술특성화 사업단이 주최한 ‘Young Art Fair’(16∼20일·롯데화랑)는 참신한 시도로 꼽힌다. 미술품 거래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광주에서, 그것도 20∼40대 젊은 작가들을 위한 무대라는 점에서 침체된 지역미술계에 생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맥 위주의 작품 구입에 익숙한 지역 컬렉터들에게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하는 기회를 제공한 점은 이번 아트페어의 가장 큰 순기능이다. ‘그들만의 잔치’로 변질된 미술시장의 거품을 빼기 위해서, 작가들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영 아트페어’와 같은 이벤트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청년작가들이 소외받는 한 광주미술의 내일은 밝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