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린 신정아 학위위조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그의 대담한 거짓말에 곤욕을 치른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일까 만은 광주 비엔날레 재단 만큼 체면을 구긴 경우가 있을까 싶다. 소위 미술전문가그룹이라고 하는 재단이사회가 가짜박사를 걸러내지 못하고 2008 광주 비엔날레 국내예술감독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후보 추천에서부터 선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재단의 어수룩함은 10년간 공들여 쌓아온 비엔날레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떨어뜨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단은 신씨의 중도하차로 ‘입김’이 세진 외국 감독 오쿠이의 비위를 맞추느라, 남모르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오쿠이 엔위저(샌프란시스코 미대학장)는 내년 비엔날레를 국내외 공동예술감독체제로 치르기로 한 재단의 방침에 따라 지난 7월4일 신씨와 함께 국외감독으로 선임된 인물. ‘신씨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연봉은 9만∼10만 불 선에서 협상중이었다. 하지만, 신씨의 낙마(落馬)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시간상으로 새 국내감독 선임이 어려워진 재단의 절박한 입장을 간파했는지, 오쿠이는 연봉 12만불(1억1천200만 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단일 감독체제에 따른 업무 과중을 감안하더라도, 역대 감독들의 연봉(6천만∼7천만 원)에 비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한술 더 떠 그는 예술감독의 겸직을 금하는 재단의 규정에 반기를 들었다. 비엔날레에 전념했던 역대 감독들과 달리, 계약기간 1년 중 3개월만 상근하겠다고 통보했다. 행여 ‘주판 알 튕기다’ 오쿠이 마저 놓칠까 염려한 재단은 예술감독의 장기 부재(不在)로 인한 업무 공백 우려를 뒤로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같은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모양이다. 오쿠이 감독의 스케줄을 꿰고 있지 못한 탓에 종종 연락이 두절돼 업무추진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게다가 지난달 초 한 달 만에 광주를 찾은 그는 ‘2008 광주비엔날레’ 기본 구상(안)’을 발표하자마자 ‘바쁘다’며 비엔날레 현안 파악은 뒷전인 채 이튿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엔 이사회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국외 보조 큐레이터 선임까지 밀어붙여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오쿠이 감독에 대한 재단의 배려를 문제 삼을 순 없다. VIP급 대우에 상응하는 차별화된 전시로 광주 비엔날레를 업그레이드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요구는 다 들어주면서 오쿠이 눈치를 보느라 할말도 못하는 재단의 무기력함이다. ‘아시아의 넘버 1’ 광주비엔날레의 권위에 걸맞게, 감독의 권한은 존중하되 견제도 잊지 않는 유연한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책 없이 끌려만 다닌다면 ‘오쿠이’만 있고 ‘광주’는 없는 ‘색깔 없는’ 비엔날레가 될지 모른다. 오쿠이를 길들이는(?), 재단의 멋진 용인술(用人術)을 기대한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