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문화정책이 없는(?) 독특한 나라다. 우리나라의 문화관광부, 일본의 문화청과 같은 정부차원의 부서가 없는 데서 나온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은 문화선진국으로서의 위용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여기에는 독립된 행정기관으로서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스미소니언 재단 등의 역할이 크다. 이들 문화기관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으로 나뉘어 문화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하지만 이들 못지 않게 문화강국으로서의 미국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메세나로 대변되는 기업의 문화후원이다. 전통적으로 기부문화가 발달된 미국은 특히 대중들의 문화향유를 지원하는 기업의 메세나가 활발하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포드 패밀리 프로그램(Ford Family Program)은 좋은 예다. 문화시민양성을 모토로 내건 이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포드사가 후원한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관람객들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참가자들은 미술관 투어, 작가와의 대화, 체험행사 등을 통해 예술관을 키운다. 비단 미국 뿐 만이 아니다. 최근들어 국내에서도 기업들의 메세나 바람이 거세다. 열풍의 진앙지는 울산. 전국 최대 공업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기업들이 수준높은 공연과 전시를 유치하는 가 하면 지역문화예술단체와 자매결연을 통해 문화행사를 후원하거나 입장권을 구매한다. 그 중에서도 울산에 본사를 둔 현대중공업의 활약은 단연 독보적이다. 현대중공업은 10여년 전부터 조선소 담장 밖에 현대예술관과 한마음 회관 등 6개의 문화·예술·복지회관을 차례로 건립해 매년 최대 150억 원을 메세나 활동에 쓰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선전에 자극받은 현대자동차, 경남은행, 농협 울산 지역본부 등 지역연고기업들이 ‘나눌수록 커지는’ 메세나의 마법에 빠지고 있다. 이에 고무된 울산시는 최근 내년까지 50개 기업과 지역 문화예술단체간의 ‘1사-1단체’ 자매결연을 성사시키는 청사진을 발표, 다른 도시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중심도시 광주는 어떤가. 규모면에서야 공업도시 울산과 비교할 수 없다고 쳐도, 질적인 면에서도 기업들의 문화후원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03년 몇몇 지역기업들이 주축이 돼 ‘광주메세나 협의회’가 꾸려졌지만, 창립 이후 성과가 거의 없어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이렇다 보니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대형이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저소득층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지원하는 작은 행사도 후원자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21세기 메세나는 문화의 지평과 기업의 가치를 끌어 올리는 문화 마케팅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사회의 문화충전을 위한 기업들의 큰 손이 늘어날 수록 문화광주의 위상 역시 높아질 것이다. 메세나는 문화선진국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